4(月)일 작은형이 저녁배로 섬에 들어왔다. 내가 몸에 탈이 나 예정보다 하루빨리 입도入島했다. 차에 빈 김치통이 가득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주문도에 삶터를 꾸린 이래 김장담그기는 우리 형제의 중요 연례행사가 되었다. 5(火)일 나는 아침배로 섬을 나서 읍내의원을 찾았다. 다행스럽게 기우였다. 의사는 4일치 처방을 내렸다. 11월부터 동절기 배편으로 바뀌었다. 오후배를 타고 들어와 집에 도착하니 4시반이 되었다. 작은형이 홀로 많은 일을 해치웠다. 알타리무를 수확하고 쪽파를 다듬어놓았다.
거의 한두둑을 파종한 게 결과적으로 다행이었다. 엄지손가락 굵기의 알맞은 총각무를 반정도 수확할 수 있었다. 형제는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6(水)일 작은형은 알타리무를 다듬고 세척하고 버무려 총각무를 김치통에 담았다. 나는 텃밭에 내려가 배추 꼬리를 도려내 마당 평상으로 올렸다. 섬에 들어온 이래 최악의 배추농사였다. 제법 크게 농사를 운영하는 대농에게 배추 30포기를 구입했다. 1통에 5천원이었다. 배추를 크기대로 갈라 함지박에 소금을 뿌리며 절였다. 감나무집 형수와 뒷집형수가 번갈아 드나들며 코치를 해주었다.
오후에 텃밭의 무를 수확했다. 무는 항상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올해도 여지없이 어린이 머리통만한 무가 탐스러웠다. 한 두둑의 무를 3분의2 수확했는데 차고 넘쳤다. 뒷집 형수네 김장용 무로, 나머지는 텃밭에 그대로 남겼다. 작은형과 나는 무를 수세미로 깨끗이 손질했고 저녁먹기 전에 무채 썰기를 마쳤다. 저녁을 먹고 꼼꼼한 작은형이 배추속을 버무렸다. 김장에서 가장 중노동이었다. 마늘, 생강, 쪽파, 새우젓, 중하새우까지. 뒷집형수가 찹쌀 풀을 한 양동이 쑤어, 버무리는 배추속에 쏟아부었다.
7(木)일 새벽 3시30분 작은형의 인기척이 들렸다. 나는 옷을 주섬주성 챙겨입고 현관문을 밀쳤다. 함지박 3통에 물을 받았다. 어제 소금에 절인 배추를 물에 헹구어 가지런히 평상에 널었다. 날이 밝았다. 위 이미지는 섬일의 베테랑 형수 네 분이 우리집 김장을 담그는 전경이다. 감나무집·뒷집 형수 그리고 배너머에 사시는 형수분들 친구였다. 모두 농사일과 갯벌 일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분들이셨다. 작은형과 나는 데모도였다. 내가 배추꼬리를 다듬어 넘기면 작은형은 마루로 날랐다. 김장 장인 네 분이 득달같이 대들었는데도 2시간이 걸렸다.
우리 두 형제가 배추속 넣는 일에 매달렸다면 밤중에 일이 끝났을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나는 농협에 들러 작은 선물을 마련했다. 식용유를 손에 들고 형수님 집집마다 들러 고마움을 전했다. 오후에 나는 텃밭의 콩을 수확했다. 역시 파종이 늦었던 콩은 빈 콩깍지였다. 어머니의 거동이 불편해지자 텃밭농사부터 구멍나기 시작했다. 작은형은 예의 깍두기를 담갔다. 뒷집형수는 또 찹쌀풀을 쑤어오셨다. 노하우가 쌓인 작은형의 깍두기 담그기는 제법 그럴싸했다. 갑진년甲辰年 김장담그기도 끝났다. 어머니는 의자에 가만히 앉아 처연한 눈길을 주고 계셨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고 있었다.
8(金)일 작은형은 차에 김장김치를 가득 싣고 첫배로 섬을 떠났다. 아파트에 도착한 작은형은 이웃들의 부러운 시샘을 받으며 어깨를 으쓱할 것이다. “동생이 섬에 살아서··· 매년 김장을 담가요. 때묻지 않은 섬이라 공기와 물이 그렇게 깨끗하고 맑을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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