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2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책이름 :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지은이 : 안도현 펴낸곳 : 한겨레출판 “명주실보다도 가는 햇살이” 이 책을 잡게 된 시원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만나게 되는 시구다. 어느 시인의 시 구절인지 기억 못하지만, 어느 책에서 빌려 온 것인지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40여년이 다 되었다. 국민학교 5학년. 새 담임은 국어과목 류혜정 선생이었다. 지금 새삼 떠올리니 선생은 미인이었다. 하얀 피부에 이목구비가 뚜렷하였다. 국어 시간에 선생은 시커먼 시골 아이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시 쓰는 시간을 만들었다. 그때 내가 제출한 시의 ‘한 구절’ 이었다. 이 구절은 세 살 터울 작은 형의 ‘완전학습’을 들추다 만났다. 나는 그때 국어시간만 되면 우쭐하였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작은 형이 읽어 내려가는 국어책을..

가시덤불 속 찔레 열매

산비탈 가시덤불 속에 찔레 열매가 빨갛게 익어 있다 잡풀 우거진 가시덤불 속에 맺혀 있어서일까? 빛깔은 더 붉고 핏방울 돋듯 선명해 보인다 겨울 아침, 허공의 가지 끝에 매달린 까치밥처럼 눈에 선연해 눈이라도 내리면, 그 빛깔은 더욱 고혹적일 것이다 날카로운 가시들이 담장의 철조망처럼 얽혀 있는 찔레 덤불 속 손가락 하나 파고들 틈이 없을 것 같은 가시들 속에서 추위에 젖은 손들이 얹히는 대합실의 무쇠난로처럼 익고 있는 것은 아마, 날개를 가진 새들을 위한 단장일 터 마치磨齒의 입이 아닌, 부드러운 혀의 부리를 가진 새들을 기다리는 화장일 터 공중을 나는, 그 새들의 눈에 가장 잘 띄일 수 있도록 열매의 채색彩色을 운영해왔을 열매 영실營實이라는 이름의 열매 새의 날개가 유목의 천막인 열매 새의 깃털 속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