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밤새 안개가 점령군처럼 섬에 주둔했습니다. 얼마나 심한지 「물방울의 화가」 김창열의 그림처럼 방충망은 맺힌 물방울로 가득했습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에 등장하는 무진의 특산물 안개와 요절시인 기형도의 샛강의 자욱한 안개 못지않게 주문도의 안개는 주민들마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듭니다. 안개는 주문도에 봄이 온 것을 알리는 전령입니다. 해토가 되면서 대지가 뱉어낸 물기 입니다. 날이 차거나 바람이 나야 안개는 물러 납니다. 정분난 봄처녀와 달리 날씨는 바람 한점 없이 고요하고 푸근합니다. 봄햇살을 만끽하기는 커녕 안개가 온통 섬을 점령했습니다. 요즘 기상나팔 소리는 트랙터와 경운기 엔진음 입니다. 축축한 안개가 휘감은 대기를 뚫고 들려오는 기계음은 날카로운 금속성이기보다 묵지근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