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고모부는 향년 72세였다. 내 기억으로 30대 후반에 내가 살던 고향 ‘한들고개’로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흘러 들어왔다. 고교를 졸업한 후 세상에 대한 울분과 분노를 알코올에 기댄 주먹질로 나날을 보내던 나를 고모부는 측은하게 보았다. 일거리가 생기면 나를 데모도로 꼭 데리고 다녔다. 목수, 미장이, 보일러 수리, 상·하수도 공사 등 고모부의 눈썰미와 손재주는 만능이었다. 하지만 농사일은 의외로 젬병이셨다. 밤 9시가 넘어서 고모부가 사시던 ‘한들고개’ 어른들 10여명이 문상을 왔다. 동네 분들이 미얀마로 관광을 가셨다가 오늘 돌아오셨다. 아주 오래 전 그들의 집은 고모부의 잔손길이 구석구석 미쳤을 것이다. 그 인연이 겨울로 가는 길목의 쌀쌀한 늦은 밤이지만 발길을 옮기게 했을 것이다. 자정이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