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사당을 되돌아 나와 응진전과 자인당으로 향했다. 나이먹은 숲 그늘이 드리운 산길은 사람그림자 하나 없었다. 나는 새소리만 지저귀는 적막한 산길을 혼자 걷고 있었다. 문득 오솔길에서 마주쳤던 여자가 떠 올랐다. 찰나지간. 하지만 그녀의 옷매무새며 표정이 확연했다. 맑고 투명한 눈동자, 창백하다 싶을 정도로 흰 피부, 짧게 커트한 머리 모양새, 정강이까지 내려오는 청바지, 아! 허리에 주홍바탕에 물방울무늬가 그려진 블라우스 소매를 동였다. 엷은 보라색 티셔츠. 나는 머리를 저으며 응진전의 16나한상과 폐사지에서 옮겨 온 석불을 모신 자인당으로 들어섰다. 산길을 내려오자 무량수전 안마당에 관람객들이 꽤나 모여들어 사진촬영을 하거나 안양루 처마 앞 백두대간 연봉을 조망하고 있었다. 나는 현판이 공민왕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