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내가 아직 쓰지 않은 것

대빈창 2025. 4. 18. 07:00

 

책이름 : 내가 아직 쓰지 않은 것

지은이 : 최승호외

펴낸곳 : 문학동네

 

우리나라 3대 문학 출판사가 반년 남짓한 시간동안 일제히 기념시집을 출간했다. ‘문학과지성시인선’ 600호 기념 시집 『시는 나를 끌고 당신에게로 간다』(2024. 4)는 500번대 뒤표지에 담긴 글들을 묶었다. 문학과지성시인선은 1978년 황동규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가 1호 시집이었다.

‘창비시선’ 500호 기념 시집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2024. 3)은 401호에서 499호까지, 각 시집에서 한편씩을 선정했다. 두 권을 출간한 시인도 한 편만을 선정해 총 90편의 시가 시선집 한 권으로 묶였다. 창비시선 1호는 故 신경림 시인의 1975년에 출간된 『농무農舞』였다. 특별시선집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은 창비시선 400번대 시인들이 〈창비시선〉 전 시집에 수록된 시 가운데 가장 좋아하거나 즐겨 읽는 시 73편을 추천했다.

‘문학동네시인선’ 200호 기념 티저 시집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2023. 10)는 앞으로 시인선을 통해 시집을 펴낼 시인들의 신작시를 실었다. 티저는 예고편 형태의 짧은 광고를 가리켰다. 문학동네시인선은 2011년 최승호의 『아메바』가 1호 시집이었다. 문학동네시인선 200호를 기념하여 한정판으로 펴낸 『내가 아직 쓰지 않은 것』은 001-199호의 시집 「시인의 말」을 묶었다. 표제는 윤성학의 『쌍칼이라 불러다오』(60쪽)의 ‘시인의 말’에서 따왔다.

 

최승호의 『아메바』, 조인호의 『방독면』, 김륭의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 서대경의 『백치는 대기를 느낀다』, 박준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오은의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윤성학의 『쌍칼이라 불러다오』, 리산의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박태일의 『달래는 몽골 말로 바다』, 이문재의 『지금 여기가 맨 앞』, 윤희상의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 권기만의 『발 달린 벌』, 이덕규의 『놈이었습니다』, 김정환의 『내 몸에 내려앉은 지명地名』, 김민정의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박정대의 『그녀에서 영원까지』, 김개미의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 신철규의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김언의 『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 이원하의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이덕규의 『오직 사람 아닌 것』.

 

내 손에 펼쳐든 ‘문학동네시인선’ 시집들이다. 티저 기념 시집 50호·100호를 제외하면 197개의 시집 중에서 21개의 시집을 잡았다. 대략 10분의 1이 내 손을 탔다. 마지막은 나의 가슴에 물기가 차올랐던 신철규의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시인선 096호)의 ‘시인의 말’의 1·2·3연이다.

 

떠들썩한 술자리에서 혼자 빠져나와 / 이 세상에 없는 이름들을 가만히 되뇌곤 했다. / 그 이름마저 사라질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을 잠깐 뒤돌아보게 하는 것, / 다만 반걸음이라도 뒤로 물러서게 하는 것, / 그것이 시일 것이라고 오래 생각했다. // 숨을 곳도 없이 / 길바닥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이 / 더는 생겨나지 않는 세상이 / 언젠가는 와야 한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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