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하게 참 철없이 2

명자꽃

그해 봄 우리 집 마당가에 핀 명자꽃은 별스럽게도 붉었습니다 옆집에 살던 명자 누나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누나의 아랫입술이 다른 여자애들보다 도톰한 것을 생각하고는 혼자 뒷방 담요 위에서 명자나무 이파리처럼 파랗게 뒤척이며 명자꽃을 생각하고 또 문득 누나에게도 낯설었을 初經이며 누나의 속옷이 받아낸 붉디붉은 꽃잎까지 속속들이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꽃잎에 입술을 대보았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내 짝사랑의 어리석은 입술이 칼날처럼 서럽고 차가운 줄을 처음 알게 된 그해는 4월도 반이나 넘긴 중순에 눈이 내린 까닭이었습니다 하늘 속의 눈송이가 내려와서 혀를 날름거리며 달아나는 일이 애당초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명자 누나의 아버지는 일찍 늙은 명자나무처럼 등짝이 어둡고 먹먹했는데 어쩌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

책이름 : 간절하게 참 철없이 지은이 : 안도현 펴낸곳 : 창비 2006년 하반기 우리 시대의 대중적 인기 작가가 연이어 추억 속의 음식을 다룬 산문집을 펴낸바 있다. 맛에 대한 이야기는 성석제의 '소풍'과 윤대녕의 '어머니의 수저'다. '소풍'은 음식과 맛에 얽힌 추억 속에서 사람사는 이야기이고, '어머니의 수저'는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맛있었던 음식을 떠올리는 얘기였다. 하지만 나는 두 권의 책을 잡지 못했다. 아니 안 잡은 것이다. 한때 두 작가의 책은 소설과 산문을 가리지않고 출간되자마자 잡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의 애정은 시들해졌다. 날렵한 입심만큼이나 현실의 흐름에 편승하는 - 대중영합주의에 기댄 상업주의라고 나는 생각한다. - 발빠른 행보(?)에 나는 눈길이 삐딱해진 것이다. 그런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