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1년 신미양요. 어재연, 어재순 장군 형제와 휘하 200여명의 군사는 48시간의 사투끝에 전멸했다. 형제장군의 순국의 뜻을 기려 쌍충비와 비각을 세웠다. 그리고 순국무명용사비와 신원을 알 수 없는 51명의 전사자를 7기의 분묘에 합장한 신미순의총비가 용두돈대 가는 길에 있었다. 특히 이들은 적의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결사항전으로 나라에 몸을 바치겠다는 결의로 싸워 모두 순국해 이곳을 찾는 이들의 옷깃을 저미게 만들었다. 나는 쌍충비각과 신미순의총비를 찾아 잔솔로 덮힌 산길을 올랐다. 오솔길 양안의 소나무들은 하나같이 땅위로 뿌리를 드러냈다. 지난 여름 폭우의 흔적이다. 아마 이 나무들이 없었다면. 신미순의총은 낮은 담장으로 묘역을 둘렀다. 상석과 한쌍의 망주석 그리고 비가 묘앞에 서있다. 배롱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