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가만히 좋아하는 지은이 : 김사인 펴낸곳 : 창비 쓰다 버린 집들 사이로 / 잿빛 도로가 나 있다 / 쓰다 버린 빗자루같이 / 나무들은 노변에 꽂혀 있다 / 쓰다 버린 담벼락 밑에는 / 순창고추장 벌건 통과 검정 비닐과 스티로폼 쪼가리가 / 흙에 반쯤 덮여 있다 / 담벼락 끝에서 쓰다 버린 쪽문을 밀고 / 개털잠바 노인이 웅크리고 나타난다 / 느린 걸음으로 어디론가 간다 / 쓰다 버린 개가 한 마리 우줄우줄 따라간다 / 이발소 자리 옆 정육점 문이 다시 열리고 / 누군가 물을 홱 길에 뿌리고 다시 닫는다 먼지 뽀얀 슈퍼 천막 문이 들썩 하더니 / 훈련복 차림의 앳된 군인 하나가 / 발갛게 웃으며 / 신라면 다섯개들이를 안고 네거리를 가로지른다 「겨울 군하리」(29쪽)의 전문이다. 시인은 어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