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지은이 : 박노해 펴낸곳 : 느린걸음 고모님이 돌아가셨다 전쟁의 레바논에서 임종도 전해 듣지 못하고 나는 뒤늦게 전라선 열차를 타고 다시 순천에서 동강 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붉은 황토 길을 걸어 고모님을 찾아간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님이 공장으로 떠난 뒤 너무 힘들고 외로운 날이면 타박타박 삼십 리 길을 걸어 찾아가던 고모 집 밭일을 마친 고모님은 어린 나를 와락 끌어안고 눈물바람으로 밥을 짓고 물을 데워 몸을 씻기고 재봉틀을 돌려 새 옷을 지어 입히고 이른 아침 학교 가는 나를 따라나와 까만 점이 될 때까지 손을 흔들고 계셨지 경주 교도소 접견창구에서 20년 만에 재회한 나를 투명창 너머에서 쓸어 만지며 수배 길에 행여나 찾아들까 싶어서 밤마다 대문을 열어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