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풍 저수지 2

내포(內浦)를 아시는가 - 11

보원사는 백제가 남조인 양나라와 교역이 무르익던 6C 중엽에 창건된 고찰로 추정되었다. 그후 백제 멸망까지 거대사찰로 융성하였고, 최치원의 『법장화상전』에 보원사에 대한 기사가 실려있어 통일신라 화엄십찰의 하나로 보았다. 보원사는 고려조 법인국사가 머물면서 고려시기 왕권의 보호를 받는 화엄종의 대찰로 절터가 무려 3만평이나 되었다. 절이 망한 시기는 문헌상 기록이 없어 정확하지 않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조선중기 이전에 이미 폐사가 되었을 것이다. 잡풀과 잡목이 우거진 폐사지에서 나그네를 제일 먼저 맞은 것은 보물 제103호인 당간지주였다. 4.2m의 잘빠진 몸매를 자랑하지만 단순한 테두리만 둘러 조각은 화려하지 않은 통일신라시대 유물이었다. 보물 제104호인 오층석탑은 높이..

내포(內浦)를 아시는가 - 10

나그네는 하산길에 큰 절은 아니지만 국보 1점과 보물 4점을 간직하고 있는 칠갑산의 보물 장곡사 경내로 들어섰다. 칠갑산 장곡사를 중심으로 겹겹이 사방에 뻗은 산줄기에 사자산의 운곡사, 무성산의 마곡사, 계봉산의 백곡사를 일러 사곡사(四谷寺)라 하는데 밀교적 교의를 바탕으로 경영된 사찰이라는 설이 전해왔다. 마곡사의 라마교 양식 오층석탑을 보면 일리가 있었다. 장곡사의 창건은 신라 문성왕12년(850)에 보조선사가 세웠는데 경내의 유물로 보아 고려시대에 번창한 것으로 보였다. 장곡사는 특이하게 2채의 대웅전이 위,아래에 자리잡았다. 절마당에 들어서면 운학루와 보물 제181호인 정면 3칸, 측면 2칸의 조선중기 건물인 하대웅전이 답사객의 시선을 끌었다. 단정한 맞배지붕의 법당은 보물 제337호인 금동약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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