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천서원과 큰길을 마주보고 덕천강가에 남명선생 이전부터 있었다는 세심정(洗心亭)이 자리 잡았다. 잔 자갈이 깔린 강바닥을 흐르는 물소리가 제법 요란하다. 강변에는 드물게 상록수가 열지어 서 있어, 그 여백으로 보이는 정경이 풍치가 있었다. 답사여정중 만나는 정자마다 ‘출입금지’ 경고판이 여행객을 주눅들게 하지만 세심정은 누구나 마루에 오를 수 있다. 두폭의 마루를 잇댄 틈새가 벌어져 바닥이 내려다 보였다. 나는 세심정 마루에 쭈그리고 앉아 메모노트를 펴 들었다. 마루에는 촌로들의 베개인 토막과 걸레, 파리채가 구석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강가에서 불어오는 소슬바람에 땀을 들이며 나는 남명의 처사로서의 삶과 그 제자들의 국망의 기로에서 구국투쟁, 조선 역성혁명 세력에 의해 선죽교에서 피살된 고려의 마지막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