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은 양지바른 낮은 둔덕에서 후손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다. 산자락의 여기저기 자리 잡은 농가들 사이 고샅을 따라 막다른 골목에 이르자 나들길 4코스 해넘이길 표지석이 서있었다. 사석으로 자연스럽게 쌓은 계단을 오르자 계단참에 일주문처럼 아름드리 밤나무가 양옆에 도열했다. 가을이 익어가며 밤송이가 아람을 벌려 밤알을 잘 손질된 잔듸에 떨구었다. 다시 계단을 오르자 왼편은 사철나무가 일렬로 도열해 묘역을 구획 지었다. 김장채소 텃밭을 마당으로 삼은 구옥(舊屋)이 석축에 등을 기대었다. 오른편은 고라니 방책으로 그물을 두른 텃밭에 고추와 들깨가 심겼다. 봉분에 밝고 환한 햇살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묘 뒤편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처럼 가는 줄기 꼭대기에 솔잎을 매단 소나무 다섯 그루가 푸른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