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많이 짧아졌습니다. 절기는 찬 이슬이 맺히기 시작한다는 한로를 막 지났습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시각, 산책을 나서려 운동화 끈을 조입니다. 대빈창 해변 바위벼랑에서 되돌아 섰습니다. 해송 숲을 지나쳤습니다. 다랑구지 들녘을 가로지른 느리 마을로 향하는 지름길을 버리고, 봉구산정을 바라보며 옛길로 들어섰습니다. 폐그물로 울타리를 두른 길가의 밭들은 끝물 고추를 달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름다운 깃털로 장식한 새 한 마리가 시멘트 포장길에서 깡총거리다 머리 위 전선줄에 앉았습니다. 나는 급히 주머니 속 손전화를 꺼냈습니다. 녀석은 분명 후투티였습니다. 아침 해가 봉구산 정상을 넘어오지 못한 이른 시간, 이미지는 흑백 실루엣으로 잡혔습니다. 인디언 추장의 머리를 장식한 깃처럼 후투티의 머리꼭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