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후투티를 다시 만나다 - 2

대빈창 2020. 10. 12. 07:00

 

해가 많이 짧아졌습니다. 절기는 찬 이슬이 맺히기 시작한다는 한로를 막 지났습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시각, 산책을 나서려 운동화 끈을 조입니다. 대빈창 해변 바위벼랑에서 되돌아 섰습니다. 해송 숲을 지나쳤습니다. 다랑구지 들녘을 가로지른 느리 마을로 향하는 지름길을 버리고, 봉구산정을 바라보며 옛길로 들어섰습니다. 폐그물로 울타리를 두른 길가의 밭들은 끝물 고추를 달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름다운 깃털로 장식한 새 한 마리가 시멘트 포장길에서 깡총거리다 머리 위 전선줄에 앉았습니다. 나는 급히 주머니 속 손전화를 꺼냈습니다. 녀석은 분명 후투티였습니다. 아침 해가 봉구산 정상을 넘어오지 못한 이른 시간, 이미지는 흑백 실루엣으로 잡혔습니다.

인디언 추장의 머리를 장식한 깃처럼 후투티의 머리꼭대기 깃털은 크고 길어서 관(冠)처럼 보입니다. 몸길이 약 28cm, 날개길이 약 15cm로 제법 큰 덩치를 가진 흔하지 않은 여름철새입니다. 주문도에 삶터를 꾸린 지 십여 년동안 녀석과 세 번 만났습니다. 송명규의 생태산문집 『후투티를 기다리며』(따님, 2010)의 표지 그림을 통해 녀석을 처음 보았습니다. 새는 과하다 싶을 만큼 멋진 치장으로 몸을 꾸몄습니다. 경기 김포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의 기억에 후투티는 없는 새였습니다. 그 시절 새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나는 책을 통하거나, 현실에서 마주칠 수 없었던 새였습니다. 

후투티는 황갈색 몸과 검은 색, 흰색의 줄무늬 날개로 다른 새와 뚜렷이 구분되는 자태를 자랑합니다. 머리장식의 깃 끝은 멋진 검은 색으로 자유자재로 눕혔다 폈다를 할 수 있습니다. 곤충 유충을 먹이로 삼지만 새끼가 성장할 때는 땅강아지와 지렁이를 주로 먹는다고 합니다. 아침저녁 산책에서 땅강아지는 보이지 않고, 지렁이가 지천이었습니다. 주문도의 후투티는 지렁이가 주식인지 모르겠습니다. 후투티는 부리가 약해 나무에 둥지를 뚫지 못하고, 딱따구리가 파 놓은 구멍이나 자연적인 나무 틈새에 3 - 5개의 알을 낳고 한 달 가량 머물다 떠난다고 합니다. 녀석은 한 번 사용한 둥지를 해마다 수리하여 다시 사용한다고 합니다. 요즘 말로 친환경(?)적 집짓기 습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대빈창 해변에서 서향으로 분지도를 마주보는 산자락의 급경사는 아까시 숲입니다. 딱따구리들이 수시로 나무를 쪼는 딱 딱 딱 ~ ~ ~ 경쾌한 소리가 산책하는 나의 귀를 즐겁게 합니다. 후투티가 힘들이지 않고 둥지를 찾을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었습니다. 수많은 후투티가 여름 한 철 주문도에 날아와 알을 낳아 새끼를 키우고 떠났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발걸음이 가까워지자 녀석은 날개를 펼쳐 잡목 숲으로 날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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