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리(kauri) 나무는 50m 이상 자라는 거대 수종으로 2천년 넘게 산다고 합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공대(AUT) 시배스천 루진저 조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웨스트 오클랜드 숲에서 살아있는 밑동을 발견했습니다. 나무는 잎을 통한 증산작용으로 뿌리에서 조직으로 물을 끌어 올립니다. 밑동은 광합성을 할 수 없습니다. 잎도 없는 밑동이 주변 나무들의 도움으로 150년 이상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약 150여 종에 달하는 나무들이 서로 뿌리를 연결시켜 가뭄 때 생존력을 높이고, 경사면에서 안정성을 추구한다고 합니다. 카우리 나무 밑동은 주변 나무들과 뿌리로 연결되어 물을 공급받아 살 수 있었습니다. 나무와 숲 생태계가 한 몸처럼 살아가는 ‘초개체(superorganism)' 를 가리키는 현상입니다.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 - 1962)는 식물의 뿌리를 ‘살아있는 죽은 존재’라고 했습니다. 이는 식물이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지만, 식물 존재의 절대적 기반을 가리킵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추분(秋分)은 백로와 한로 사이에 든 열여섯 번째 절기입니다. 추분 무렵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온에서 여름이 가고 여지없이 가을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실감합니다. 먼동이 터오면서 산책길에 올랐습니다. 반환점 나무테크 정상 부근의 뿌리를 드러낸 아까시 나무가 용케 네 번의 태풍을 이겨내고 바위벼랑에 매달려 삶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작년의 제13호 링링, 올해 제8호 바비, 제9호 바이삭, 제10호 하이선 태풍이 강화도를 비껴가며 엄청난 비바람을 몰고 왔습니다. 나무는 뿌리를 바위에 걸친 채 나무테크에 몸을 기대 숨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처서가 지나면 모든 식물은 생장을 멈춘다고 합니다. 태풍에 시달린 탓인지 아까시 나무는 가지 꼭대기에 나뭇잎을 간신히 매달고 있었습니다. 나무의 삶은 태생부터 고달팠습니다. 하필이면 바위에서 싹을 틔워 뿌리는 물을 찾아 벼랑 밑 흙쪽으로 뻗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허공에 드러난 뿌리는 줄기처럼 두꺼운 갑옷차림이었습니다. 겨울 추위에 적응하려는 나무의 노력인지 모르겠습니다. 태풍이 몰고 온 강풍은 나무를 몹시 흔들었겠지만 폭우는 목마름을 적셔주었습니다. 바람에 맞서 싸워야하는 나무는 뿌리를 깊게 내리지 않고 오히려 옆으로 넓게 뻗친다고 합니다. 나무의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뿌리가 허공에 드러난 바위벼랑의 아까시 나무의 생명력이 경이로웠습니다. 물을 찾아 뿌리를 뻗는 나무의 무서운 집념을 배워야겠습니다. 나의 나태와 안일을 일깨우는 아까시나무의 인내에 기운을 추스리고 싶었습니다. 참담한 악조건에 굴하지않고 고달픈 삶을 이겨내는 아까시 나무가 스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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