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산 2

마리산에서 백두산과 한라산의 거리는 같다

마리산은 한반도의 중앙에 자리잡아 산정에서 남쪽 한라산과 북쪽 백두산까지 거리가 같다. 나는 전등사를 찾아가는 길 초입의 삼랑성을 지나면서 고려무신 최씨정권이 강화 천도의 정당성을 백성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삼랑성을 성역화시켰다는 글을 인용했다. 그 글은 마리산도 같은 역사적 의미로 설명했다. 마리산(摩利山)은 범어(梵語) 태양빛(日光)을 음역한 마리지천(摩利之天)이 거주한 산이라는 뜻이다. 마리지천은 신통한 능력으로 형상을 숨기고, 중생의 고통을 소멸시켰다. 그런데 마리지천은 제석천의 권속으로 손자에 해당되어 환인, 환웅, 단군으로 이어지는 단군설화의 건국신화와 그 느낌이 일치하므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유추했다. 또한 참성단은 조선 숙종32년(1706)에 선두포언을 쌓기 이전에 하나의 섬이었으므로 ..

강화도의 간척 역사는 800년이 되었다

강화는 지리적 위치상 개성, 서울 등 왕도의 목구멍에 해당하여 “인후지지(咽喉之地)”라 한다. 그러기에 전란을 겪을 때마다 전략적 요충지로 요새화되었다. 그런데 요새화는 관방시설의 구축도 필요하지만 장기전에 있어 병참기지의 기능이 필수적이다. 고려 무신정권은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도에 천도했다. 그때 강화도에 모여든 난민들의 수는 40여만명으로 추산된다. 이 급증한 인구를 부양할 막대한 양의 식량문제가 현실적으로 대두되었다. 800년간 지속된 간척사업으로 강화도는 전국 다섯번째로 큰 하나의 섬이 되었다.복잡했던 해안선은 지속적인 간척으로 단순해졌으며, 강화도는 130㎢의 간척평야가 조성되었다. 현재 강화도의 총면적은 424㎢으로 경지 가운데 논면적이 76%를 차지하여 해발 10m 이상의 계곡 충적지논을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