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는 지리적 위치상 개성, 서울 등 왕도의 목구멍에 해당하여 “인후지지(咽喉之地)”라 한다. 그러기에 전란을 겪을 때마다 전략적 요충지로 요새화되었다. 그런데 요새화는 관방시설의 구축도 필요하지만 장기전에 있어 병참기지의 기능이 필수적이다. 고려 무신정권은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도에 천도했다. 그때 강화도에 모여든 난민들의 수는 40여만명으로 추산된다. 이 급증한 인구를 부양할 막대한 양의 식량문제가 현실적으로 대두되었다. 800년간 지속된 간척사업으로 강화도는 전국 다섯번째로 큰 하나의 섬이 되었다.복잡했던 해안선은 지속적인 간척으로 단순해졌으며, 강화도는 130㎢의 간척평야가 조성되었다. 현재 강화도의 총면적은 424㎢으로 경지 가운데 논면적이 76%를 차지하여 해발 10m 이상의 계곡 충적지논을 제외하고 모두 간척지에 조성된 논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간척역사로 우리나라의 도서 가운데 가장 논이 많은 지역이 강화도다.
강화도는 별립산, 고려산, 혈구산, 진강산, 길상산, 마리산등 300 ~ 600m급 산지가 동서방향으로 발달하고, 그 산지 사이는 넓게 평야지대가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이 평야는 원래 바닷물이 드나들던 포구로서 간척사업으로 조성된 인공평야인 것이다. 고려말까지 마리산은 고가도(古家島)로 본도와 분리되어 있었다. 그러기에 가릉포와 선두포 사이로 조수가 통해 선박이 다닐 수 있었다.
화도(華道)는 원래 섬이었는데 간척사업으로 인해 본도에 연륙되면서 강화도 최남단에 위치하게 되어 하도(下道)라 불렸는데 1937년에 화도로 개칭되었다. 중앙에 마리산이 자리잡고 있어 그 여맥이 사방으로 뻗어 산지가 많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로 향하면 수평선에서 한라산 끝머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제주도는 한라산이 중앙부에 자리잡아 산자락과 능선이 섬의 전부를 이루고 있다. 화도면이 예전 섬이었던 고가도도 마찬가지 형국이었을 것이다.
가릉포에서 마리산으로 향하는 길 양안은 진달래의 분홍빛과 개나리의 노란꽃이 보기좋게 앙상블을 이루었다. 삼거리가 나타나면 정면으로 보이는 화도초등학교를 앞에두고 좌회전하여 조금가면 마리산국민관광지 관리사무소가 나타났다. 작년 초겨울 나는 삼산에서 건너와 마리산을 올랐다. 잘 포장된 진입로 양안은 단풍나무가 심겨졌다. 우리가 흔히 보는 아기손바닥같은 단풍나무잎이 보기좋게 가을옷을 입었다. 얼마쯤 오르자 노란잎을 매단 나무들이 눈에 뜨여 나는 당연히 은행나무로 생각했다. 거리가 좁혀지면서 그것은 뜻밖에도 노란옷을 입은 단풍나무였다. 가을에 단풍하면 새빨간 잎사귀를 매다는 것으로 인식된 나에게 그 풍경은 잠시 당혹스러웠다. 진입로가 끝나면서 시작되는 계단길 초입에 약수터가 자리 잡았다. 그때 젊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내려오는 예닐곱 살로 보이는 사내아이의 자랑섞인 목소리에 참성단을 오르는 계단수를 처음 알았다.
“엄마, 지금 내려온 계단이 몇개이게”
“모르겠는걸, 그럼 너는 셈해 봤니”
“그럼, 모두 918개야”
잘 닦인 산자락 초입 진입로 계곡을 거슬러 올라갔다. 겨울 가뭄을 해소시켜 준 단비가 흠뻑 내려 바위를 타는 계류소리가 웅렁찼다. 산자락 경사면의 헐벗은 나무들은 하나같이 가지를 하늘로 치뻗었다. 그것은 흡사 세찬 바람에 일렁이는 불길처럼 보였다. 새봄을 맞아 왕성한 신진대사를 준비하는 나무들의 준비체조일까. 눈을 들어 능선을 쳐다보면 소나무의 짙푸른 녹색과 불붙기 시작한 진달래의 분홍군무가 기묘한 조화로 눈길을 끌었다. 날씨가 사나웠다. 물기를 담뿍 머금은 먹구름이 산정으로 몰려들었다. 바람마저 세차다. 사나운 기후탓인지 산중에 적막한 기운마저 감돌았고, 손으로 꼽을 정도의 사람들만이 산을 올랐다. 계단 쉴참에 조선초 태조가 이색, 이강과 마리산에서 재숙하며 천재를 올리고, 시문을 남긴것을 기념하여 시판을 세웠다.
참성단(塹城檀)
인기척 드문 오지에서/맑은 마음으로 밤낮 재계하였는데/황국 우물가에 드리웠고/층계 이끼 적시는구나
헌수를 간절히 빌어야지/샛별은 점점이 기우러져 가네/봄 가을 때를 잃지말고 찾아야지/성스러운 단군님의 덕 품어나 볼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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