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는 볼만한 자연풍광이나 문화유산이 섬 곳곳에 산재해 있어 ‘작은 국토박물관’이라 한다. 나의 강화도 답사는 문화유산에 대한 부족한 안목과 시간에 쫓겨 겉핡기식으로 훑어 볼 수 밖에 없었다. 강화도는 선사시대 유적부터 근세 국방유적까지 즐비하다. 화도면 동막리 큰말 해안가의 빗살무늬토기 유적지와 하점면 삼거리의 북방식 최대 고인돌. 단군설화가 살아 숨쉬는 정족산의 삼랑성과 마리산의 참성단. 불교유적으로 전등사와 정수사, 오련지 설화의 청련사, 백련사, 적석사, 황련사 그리고 삼산섬의 보문사. 강화천도기의 고려궁터, 홍릉, 가릉. 조선시대의 강화읍성과 교동향교, 김상용 순절비. 국방유적으로 광성보, 초지진 그리고 삼암돈대 등. 하지만 나의 여정에서 발길이 미치지 못한 곳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지역적으로 본도에 딸린 3개 도서지역 가운데 서도는 발길조차 닿지 못했다. 또한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을 추진중인 고인돌은 고려산을 중심으로 80여기가 흩어져 있는데, 대표적인 하점고인돌과 내가고인돌만 들렀다. 수도 서울의 목구멍인 강화도를 요새화하기 위해 조선 숙종은 강화도 해안 전역의 돌출부에 톱니바퀴처럼 53개의 돈대를 설치했는데 그중 나는 광성보와 덕진진, 초지진 그리고 삼암돈대에 머물렀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에서는 강화도 문화유적 답사코스를 두 갈래로 나누었다. 하나는 강화읍을 중심으로 읍내 곳곳에 자리잡은 읍성과 고려궁터 그리고 하점면의 고인돌과 오층석탑, 석조여래입상 그리고 불교유적으로 선원사터와 청련사다. 둘은 해안선을 따라 근세 국방유적과 전등사와 정수사, 마리산의 참성단 그리고 석모도의 보문사다. 한편 문학여행의 답사처로서 강화도를 빼 놓을 수 없다. 그것은 조선 숙종때 이조판서를 지낸 남용익이 ‘호곡시화(壺谷詩話)’에서 고금의 뛰어난 시인을 뽑았는데, 고려의 3인중 이규보의 묘가 길상면 길직리 백운곡에, 조선의 3인중 권필의 유허비가 송해면 하도리 오류내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강화도를 포함한 교동도, 석모도의 해안저습지 간척으로 인한 주변 경관의 변화는 지역 주민의 생활사를 규정지을 수 있는 핵심적인 요소로서 인문지리학적 자료로 소중하다. 또한 남동해안에 펼쳐진 광활한 갯벌은 세계적인 희귀성으로 국립공원 지정이 마땅하다. 한걸음 더 나아가 갯벌의 풍부한 먹이를 찾아 몰려드는 천연기념물 조류들을 보호하고, 자연생태계 보전차원에서 람사협약 등록습지로 지정해야 한다. 현대사회의 생태적 위기의 본질을 묘사해 환경분야의 필독서로 불리는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를 옮긴 김종철은 이렇게 얘기한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물질적 생산과 소비의 증대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에 의해 보증된다’
지방자치제 강화도의 재정도는 열악하다. 하지만 21세기는 문화전쟁의 시대이다. 여기에 해답이 있다. 신영복 교수는 ‘더불어 숲 2’에서 일본의 작은 도시 가나자와(金澤)를 찾으면서 ‘달리는 수레위에는 공자(孔子)가 없습니다.’라는 소제(小題)로 우리에게 엽서를 띄웠다. -도도한 세계화 논리와 성장 신화에 맞설 수 있는 단 하나의 고장이라도 만들어 낼 수는 없을까. 자기 고장의 역사를 계승하고, 산천을 지키고, 그 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키워낼 수 있는 진정한 삶의 고장을 만들어낼 수 없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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