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江都를 가다

마리산에서 백두산과 한라산의 거리는 같다

대빈창 2012. 11. 9. 06:57

마리산은 한반도의 중앙에 자리잡아 산정에서 남쪽 한라산과 북쪽 백두산까지 거리가 같다. 나는 전등사를 찾아가는 길 초입의 삼랑성을 지나면서 고려무신 최씨정권이 강화 천도의 정당성을 백성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삼랑성을 성역화시켰다는 글을 인용했다. 그 글은 마리산도 같은 역사적 의미로 설명했다. 마리산(摩利山)은 범어(梵語) 태양빛(日光)을 음역한 마리지천(摩利之天)이 거주한 산이라는 뜻이다. 마리지천은 신통한 능력으로 형상을 숨기고, 중생의 고통을 소멸시켰다. 그런데 마리지천은 제석천의 권속으로 손자에 해당되어 환인, 환웅, 단군으로 이어지는 단군설화의 건국신화와 그 느낌이 일치하므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유추했다. 또한 참성단은 조선 숙종32년(1706)에 선두포언을 쌓기 이전에 하나의 섬이었으므로 마치 해자(垓字)를 둘러친 참성(塹城)과 같은 모양에서 이름이 연유한 것으로 보았다.

해발 469m인 마리산 정상에는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사적 136호인 참성단이 자리 잡았다. 참성단의 아래는 지름 4.5m의 둥그런 원형을, 위는 2m의 정방형의 제단을 쌓았다. 이 형태는 고대인들의 천지관,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것을 나타냈다. 한편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에서 펴낸 ‘우리의 과학문화재’는 참성단을 고려의 강화도 천도시기 천문관측 시설로 추정했다. 그 이유로 원래 단의 구조가 경주의 첨성대와 비슷하였고, “서운관지(書雲觀志)” 측후조에 관상감 관원을 마리산에 파견해 혜성을 관측케 했다는데서 찾았다. 하지만 참성단이 고려말 무신정권시의 천문관측소였든, 마리산의 이름이 성역화 사업의 일환이었든 지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단군왕검의 유적으로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 인식은 계단을 오르면서 느낌으로 다가온다. 문득 고개를 들면 하늘선은 화강암 바위들로 이루어졌고, 기암절벽들이 정상을 향해 솟아 하늘의 관문(關門)처럼 보였다.

마리산 정상에 서면 제방을 쌓은 간척논과 남해 다도해를 연상케되는 장봉도를 위시해 겹겹으로 시야 끝간데까지 올망졸망 떠있는 섬들, 서녁 노을에 붉게 물든 서해가 장관이다. 시야를 정수사 능선으로 향하면 초피산이 눈에 들어온다. 인근 촌로들은 일명 뾰족산이라고도 하는 초피산을 남산(男山), 마리산을 여산(女山)이라고 하는데, 마리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누구든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마리산의 대표적인 등산로는 화도초등학교에서 시작해 참성단을 거쳐 정수사로 빠지는 능선으로 대략 2시간 30여분이 소요된다. 마리산은

해발 469m에 불과하지만 해수면 가까이에서 등산이 시작되어 만만히 볼 수 없다. 참성단으로 향하는 가파른 오르막은 숨이 턱까지 차오르지만, 시야 가득 펼쳐진 서해를 바라보는 눈맛과 산정까지 불어오는 바다바람에 땀을 들이는 색다른 경험을 맛볼 수 있다. 마리산 정상을 조금 지나면 함허동천과 정수사로 빠지는 갈래길이 나타나는데 산행의 묘미가 있는 정수사 길을 택하는 것이 좋다. 이 길은 암릉이 계속되면서 긴장을 풀 수 없게 만들어 이성친구끼리 이 능선을 같이타면 연인으로 발전한다는 웃으개 애기를 마리산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그것은 서로 손을 잡아 줄 수 밖에 없는 험한 바위길이기 때문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