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癸卯年 입동 다음날, 작은형이 첫배로 섬에 들어왔다. 어머니의 김장 담그기 75년 노하우가 빛을 발할 것이다. 뒷집 고양이 어린 흰순이도 한 몫 하겠다고 얼굴을 내밀었다. 어머니 지시대로 텃밭의 쪽파를 큰 플라스틱 대야와 작은 함지박에 가득 차게 뽑았다. 그때 작은 형 차가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어머니는 열린 봉당에서 쪽파를 다듬었다. 작은형은 꼼꼼한 성미대로 알타리무를 손질했다. 나는 배추 밑동을 도려냈고, 무를 간단없이 머리와 꼬리를 잘라 마당으로 날랐다. 올해 김장채소 무, 배추, 알타리, 쪽파 모두 밑동이 굵고, 포기가 차서 탐스러웠다. 텃밭농사는 보기 드물게 풍년이었다. 하늘이 어두워졌다. 무를 수세미로 닦아 광주리에 담아 물기를 말렸다. 점심을 먹고 오수에 빠졌다. 빗소리에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