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문을 벗어나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미당 서정주시비가 길가에 바짝 서있다. 내소사에서 ‘내소사 대웅전 단청’을 떠 올렷는데 선운사에서 미당의 육필원고를 새겨놓은 시비를 만났다. 고창 선운리는 시인의 고향이며 시집 『질마재 신화』의 무대였다. 미당의 시는 경험적 삶의 내용을 형이상학적 질서의 세계로 승화시켰다는 찬사를 받는다. 하지만 나는 카메라만 들이대고 시비도 읽지 않으채 내쳐 걸음을 내디뎠다. 어느 평론가는 미당을 ‘시 쓰는 일에 있어서 백년에 하나 나올까말까 한 인물’로 추앙했지만, 나의 머리속은 온통 태평양전쟁말기 일본 군국주의의 악명높은 가미가제특공대를 찬미한 그의 친일시 전형인 “마쓰이 오장 송가”로 들끓고 있었다. (······)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오장 우리의 자랑 그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