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아침 7시 나는 구계등에 다시 섰다. 밤에 비가 내렸는 지 모든 사물이 물기를 받아 싱그러워 보였다. 활처럼 휘어진 해안선을 굽어보고 있는 구릉의 소나무가 뚜렷하게 나의 망막 속으로 투영되었다. 어디선가 낯이 익은 수형인데. 그것은 다름아닌 단원의 실경산수화의 소나무였다. 그때 왼켠 구릉의 소나무 숲에서 자갈밭으로 한패의 촬영팀이 몰려 내려오면서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저기 떠들어대는 불협화음. "야, 콘티 좀 찾아와" "상주복, 준비 됐어." "검정색 양복 입어야 돼요." 아! 지금 촬영중인 내용은 분명 윤대녕의 소설 '천지간'이 틀림 없었다. 소설 속의 남주인공은 상중으로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 나의 추측은 정확했다. 10월말에 TV극장에 방영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