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노트를 접고 산천재를 나오는데 할머니 한분은 아예 도시락을 베고 오수에 빠져 들었다. 남명학연구소에 연이어 사리회관 경노당이 있는데 한낮부터 할머니들의 말다툼 소리가 요란하다. 산천재옆 가게에서 진주행 직행을 기다리는데, 길건너 맞은 편에 작은 비각이 보였다. 직감으로 송시열 신도비였다. 신도비앞 자투리 땅에 키작은 단풍나무와 회양목이 비좁은 터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노론의 영수 우암 송시열이 세운 신도비는 흙돌로 둘러싼 시골 뒷간만한 담장안에 보호되고 있었다. 글을 시작하면서 밝혔듯이 지리산은 남원, 구례, 하동, 함양, 산청을 품안에 안고 있다. 진주로의 발길은 나의 여정에서 끝 마무리로, 하동 쌍계사에 발길이 미치지 못한 아쉬움을 진주성지의 답사로 대신하려는 보상 욕구의 발로였는 지도 모르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