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2

큰형의 죽음 - 2

나는 조카에게 봉투를 건네며 친척 어르신들이 찾아왔을 때 지킬 예를 몇 가지 일러주고 물었습니다. “남긴 말씀이라도 있으셨느냐” “아버님은 가족 형제끼리 화목하게 지내라고”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하느님은 나를 너무 빨리 데려가시는구나.” 큰형은 삶에 크게 애착을 가지셨다고 합니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에 비해 큰 형의 69세는 때 이른 죽음이었습니다. 사실 큰형과 나의 우애는 아버지 죽음을 계기로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는지 모르겠습니다. 홀로 계신 어머니를 섬에 모시면서 나는 큰형네로 향하는 발길을 끊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하루를 묵고 섬에 들어온 나는 이틀을 자고 발인날 아침, 첫배에 올랐습니다. 작은형은 새벽같이 인천집을 나서 장례식장 발인을 지켰고, 운구 행렬의 영정을 들었습니다. 김포성당 미사..

볼음도의 이팝나무

옛날 경상도 어느 마을에 열여덟 살 착한 새 며느리가 살았습니다. 고된 시집살이를 묵묵히 순종하였지만 고약한 시어머니는 허구한 날 트집을 잡고 구박을 하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며느리의 고운 심성에 동정과 칭송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집안에 큰 제사가 돌아와 며느리는 난생 처음 쌀밥을 짓게 되었습니다. 시집와서 잡곡밥만 지었던 며느리는 조상들께 드리는 제삿밥 뜸이 잘 들었나 밥알 몇 알을 떠먹어 보았습니다. 그때 부엌에 들어 온 시어머니가 제사에 쓸 메밥에 며느리가 먼저 손을 대었다고 갖은 학대를 했습니다. 며느리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뒷산에 올라 목을 매었습니다. 이듬해 며느리가 묻힌 무덤가에서 나무 한 그루가 자라더니 흰 꽃을 가득 피워 냈습니다. 그 후 동네 사람들은 이 나무를 이팝나무라 불렀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