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원사는 백제가 남조인 양나라와 교역이 무르익던 6C 중엽에 창건된 고찰로 추정되었다. 그후 백제 멸망까지 거대사찰로 융성하였고, 최치원의 『법장화상전』에 보원사에 대한 기사가 실려있어 통일신라 화엄십찰의 하나로 보았다. 보원사는 고려조 법인국사가 머물면서 고려시기 왕권의 보호를 받는 화엄종의 대찰로 절터가 무려 3만평이나 되었다. 절이 망한 시기는 문헌상 기록이 없어 정확하지 않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조선중기 이전에 이미 폐사가 되었을 것이다. 잡풀과 잡목이 우거진 폐사지에서 나그네를 제일 먼저 맞은 것은 보물 제103호인 당간지주였다. 4.2m의 잘빠진 몸매를 자랑하지만 단순한 테두리만 둘러 조각은 화려하지 않은 통일신라시대 유물이었다. 보물 제104호인 오층석탑은 높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