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겸재의 한양진경
지은이 : 최완수
펴낸곳 : 동아일보사
가헌嘉軒 최완수(崔完秀, 1942년 - )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연구실장의 책을 처음 접한 것이 『진경시대』(돌베개, 1998) 두 권이었다. 이어 『명찰순례』(대원사, 1994) 세 권을 찾았다. 『한국 불상의 원류를 찾아서』(대원사, 2002) 첫째 권을 손에 넣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엮고 도서출판 《학고재》가 펴낸 『謙齋 鄭敾』(1992) 도록이 책장 한 귀퉁이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군립도서관에 발걸음이 잦으면서 불현듯 저자가 떠올랐다. 소장된 세 권에서 가장 먼저 집어든 책이었다. 내가 잡은 책은 2004년 《동아일보사》의 초판본이었다. 절판된 책 『겸재의 한양진경-북악에 올라 청계천 오수간문 五間水門 바라보니』는 2018년 《현암사》에서 양장본 개정증보판으로 나왔다.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 1759년)은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개척자이면서 완성자였다. 진경산수화는 토산土山과 암산岩山이 어우러진 우리 국토의 아름다운 산천을 『주역周易』의 음양조화陰陽調和 원리에 따라 화면을 구성하는 독특한 고유 화법畵法을 가리켰다. 겸재는 화가면서 성리학자였다. 정선의 인문학적 소양은 성리학 이념에 입각한 새로운 미술 기법을 창안했다. 책은 겸재의 한양 진경을 감상하며 옛 서울을 여행할 수 있게 만든 화집畵集이었다.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明堂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터가 서울이었다. 삼각산(북한산)이 조산祖山이 되고 백악산(북악산)이 현무, 낙산이 청룡, 인왕산이 백호, 남산이 주작으로 비단주머니 형상의 터였다. 동쪽의 안암산, 서쪽의 안산, 남쪽의 관악산이 서울을 한 겹 더 둘러싸서 겹주머니 형상을 이루었다. 한반도의 가장 큰 강 한강은 서울의 동북쪽에서 흘러 들어와 서울 남쪽을 휘감아 돌면서 흘러 바다에 이르렀다. 서울의 동남서 삼면을 천연의 해자垓字로 에워싼 형국이었다.
겸재는 65세이던 영조16년(1740) 초가을 양천陽川 현령에 제수되었다. 절친으로 당대 진경시眞景詩의 태수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 1671-1751년)과 시화를 서로 바꿔보자는 시화환상간詩畵換相看의 약조를 맺었다. 그 약조를 지켜 그린 것이 현재 간송미술관에 수장된 《경교명승첩 京郊名勝帖》 상하 두 권이다. 간송미술관 소장본 《장동팔경첩莊洞八景帖》과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장동팔경첩莊洞八景帖》은 5곳이 겹쳤다. 〈독락정獨樂亭〉, 〈취미대翠微臺〉, 〈대은암大隱岩〉, 〈청송당聽松堂〉, 〈청풍계淸風溪〉.
첫 챕터 〈인곡유거 仁谷幽居〉는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엷게 채색한 종이 그림으로 영조31년(1755)경에 그려졌다. 겸재가 52세부터 84세로 죽을 때까지 살았던 인왕산 골짜기 자기집의 택호宅號였다. 유거는 마을과 멀리 떨어진 외딴 집이라는 의미였다. 〈인곡유거〉는 겸재가 후반 생애의 생활을 그린 자화경(自畵景-스스로의 생활 모습을 그린 진경)이었다. ‘인곡유거’는 세심대 洗心臺 산봉우리를 등지고 남향해 있던 집이다. 그 집을 동쪽에서 내려다 본 시각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마지막 챕터 동작진銅雀津은 영조20년(1744년)경 비단에 엷은 채색으로 그린 그림이다. 지금 동작대교가 놓인 동작나루를 서울 쪽에서 보고 그렸다. 멀리 관악산 우면산이 원경이고 현재 국립묘지가 들어선 강 건너 동작마을 일대가 그림의 중앙에 포치되었다. 강물에는 나룻배 여러 척이 여기저기 정박했다. 한강과 백사장이 근경을 이루고 선비 일행이 부르자 나룻배 한 척이 쏜살같이 강 이쪽으로 건너오고 있는 풍경이었다.
책은 겸재가 그린 한양 풍경 58점을 소개하면서 역사, 지리, 인물, 시문詩文, 서화書畵, 종교, 이념 등을 다채롭고 깊이 있게 엮었다. 『겸재의 한양진경』은 그림 풍경의 현재 위치와 당시 겸재의 개인적 상황, 그림에 얽힌 뒷이야기 등을 담아냈다. 저자는 말했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가 하루 중에도 해가 중천에 뜬 정오에 해당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겸재 세대였던 만큼 겸재의 서울 사랑은 최고조”에 이르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