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강신주의 감정수업

대빈창 2022. 8. 18. 07:00

 

책이름 : 강신주의 감정수업

지은이 : 강신주

펴낸곳 : 민음사

 

비루함 / 자긍심 / 경탄 / 경쟁심 / 야심 / 사랑 / 대담함 / 탐욕 / 반감 / 박애 / 연민 / 회한 / 당황 / 경멸 / 잔혹함 / 욕망 / 동경 / 멸시 / 절망 / 음주욕 / 과대평가 / 호의 / 환희 / 영광 / 감사 / 겸손 / 분노 / 질투 / 적의 / 조롱 / 욕정 / 탐식 / 두려움 / 동정 / 공손 / 미움 / 후회 / 끌림 / 치욕 / 겁 / 확신 / 희망 / 오만 / 소심함 / 쾌감 / 슬픔 / 수치심 / 복수심

 

『강신주의 감정수업』은 ‘거리의 철학자’ 강신주의 48개 감정에 대한 수업이었다. 책은 스피노자의 48개의 감정에 대한 정의, 48권의 걸작 세계문학, 저자가 독자에게 건네는 48개의 「철학자의 어드바이스」, 그리고 세계 명화 45점으로 구성되었다. 1부 ‘땅의 속삭임’, 2부 ‘물의 노래’, 3부 ‘불꽃처럼’, 4부 ‘바람의 흔적’에 각각 12챕터씩 실렸다. 각 부의 제사題詞는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대지 그리고 휴식의 몽상에서』, 『물과 꿈』, 『촛불의 미학』, 『공기와 꿈』에서 인용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감정의 철학자’로 불리는 혁명적 사상가였다. 철학자들이 인간의 이성에서 윤리학을 시작할 때 그는 자신의 윤리학을 욕망에서 출발했다. 저자는 스피노자의 『에티카』 3부 「정서의 정의」에서 대표적인 감정 48개를 끌어왔다. 그리고 스피노자의 정의를 독자에게 쉽게 풀어쓰기 위해 세계 문학 48권에서 예시를 제시했다.

첫 챕터 ‘비루함’은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극복되어야 할 노예의식을 말한다.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이렇게 정의했다. ‘비루함(abjectio)이란 슬픔 때문에 자기에 대해 정당한 것 이하로 느끼는 것이다.’ 저자는 투르게네프(Ivan S. Turgenev, 1818-1883년)의 『무무Mumu』를 불러왔다. 벙어리이지만 힘이 장사였던 성실한 농노 게리심은 진흙벌에서 죽어가는 강아지 무무를 구해 함께 살았다. 게리심이 사랑한 여자를, 여지주는 다른 농노에게 시집보내고 무무를 죽이려고 들었다. 게리심은 스스로 무무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여지주에게 순종적인 존재에서 게리심은 비로소 비루함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챕터 ‘복수심’은 마음을 모두 얼려 버리는 지독한 냉기였다. 스피노자는 ‘복수심(vindicta)은 미움의 정서로 우리에게 해악을 가한 사람에게 똑같은 미움으로 해악을 가하게끔 우리를 자극하는 욕망이다’라고 정의했다. 저자는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 1922-1999년)의 『빙점氷點』을 끌어와 독자에게 ‘복수심’을 쉽게 풀어냈다. 병원장 게이조는 젊은 의사와 불륜에 빠진 아내 나쓰에에게 참혹한 복수를 결심했다. 어린딸 루리코를 참혹하게 살해한 살인마의 딸을 입양시키는 것이다.

스무 번째 챕터 ‘음주욕’은 나의 눈길이 가장 오래 머문 꼭지였다. 스피노자는 이렇게 정의했다. ‘음주욕(ebrietas)은 술에 대한 지나친 욕망이나 사랑이다.’ 저자는 미국의 극작가 유진 오닐(Eugene Gladstone O'Neill, 1888-1953년)의 『밤으로의 긴 여로』(1956)를 불러왔다. 늦은 밤 여름 별장의 거실 테이블에서 아버지와 둘째 아들이 술을 마시며 자신들의 모습을 한탄했다. 둘째는 중증 폐병을 앓고 있었다. 어머니는 산고 후유증으로 돌팔이 의사에게 모르핀을 맞다가 마약에 중독되었다. 첫째는 술주정뱅이로 어느 주점에서 뒹굴고 있을 것이다. 나는 한때 술에 찌들어 살았다. 좌절・열등감을 알코올에 기대었을 것이다.

철학자는 말했다. “한국인은 일제강점기부터 100년 동안 정치적 독재와 자본의 독재를 거치며 감정을 눌러버리는 연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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