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沙平驛에서

대빈창 2011. 2. 22. 06:50

 

책이름 : 사평역에서

지은이 : 곽재구

펴낸곳 : 창비

 

나는 이 시집을 두번 구입했다. 첫번째는 대학시절인 80년대 후반이었고, 지금 다시 손에 잡은 시집은 개정판 25쇄로 2009년 10월에 발행되었다. 1983년에 초판 발행된 이 시집은 시인 곽재구의 처녀시집으로 그동안 10만부가 넘게 팔린 스테디셀러다. 그만큼 이 땅의 사람들 가슴에 시인의 서정이 깊게 각인되어 있다는 뜻이다. 1부에 실린 19편은 모두 미발표작이고, 2부에 실린 23편의 시는 시인이 동인으로 활동하던 '5월시' 1, 2, 3집에 실린 시들이고, 3부의 11편은 '21인신작시집 - 꺼지지 않는 횃불로- 및 여러 문학지에 실린 시편들, 그리고 4부 대인동 연작시는 '시인1집'에 실렸었다.  '축전 -나해철에게 '란 시로 발문을 쓴 나해철은 지은이보다 한해 늦게 신춘문예로 등단한 것을 알 수 있다. 아마! '5월시' 동인이었을 것이다. 5월하면 당연히 광주사태가 떠오르고, 80년대의 감정은 분노와 적개심이었다. 시인은 81년 표제시 '沙平驛에서'로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왔다. 참고로 '사평역'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임철우의 소설에서 '사평역(1983)'은 다시 등장한다. 행정구역 사평은 나주 근처의 조그만 마을로 기차가 지나지 않는다. 많이 아쉽다. 요즘처럼 팍팍한 현실에서 젊음의 고뇌를 잠시 부릴만한 간이역 한 곳을 가슴속에 품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럼 시대적 아픔을 서정적으로 그려냈다는 표제시 '沙平驛에서'를 펼쳐보자.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내리고/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그믐처럼 몇은 졸고/몇은 감기에 쿨럭이고/그리웠던 순간을 생각하며 나는/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침묵해야 한다는 것을/모두들 알고 있었다/오래 앓는 기침소리와/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그래 지금은 모두들/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자정 넘으면/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나는 이 구절이 가장 가슴에 와 닿는다. 참! 절묘한 표현이다. 어둠 속에서 벌겋게 달아오른 난로에 손바닥을 펴서 벌리면 정말 파랗게 보인다. 그해 겨울 나는 톱밥난로가 아닌 조개탄 난로가에 혼자 앉아 코발트색으로 짙어가는 손바닥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질풍노도의 시기. 자신도 알지못할 세상에 대한 분노로 모든 것이 같잖게 보였다. 고작 1년을 버텼지만 나는 대학생활에 흥미를 잃었다. 학비를 대주는 인천 도금공장의 작은 형을 찾아갔다. 자퇴를 하겠다는 나의 결심에 작은 형은 한발짝 뒤로 물러나 휴학을 하라고 구슬렸다. 1년간 뒷바라지를 해준 작은 형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엎어치나 메치나였다. 철부지인 나는 막장 인생을 떠 올렸다. 대한석탄공사는 도계읍에 있었다. 전날의 폭음으로 술이 덜 깨 이른 아침부터 휴게실을 찾아 청량음료로 갈증을 달래던 나와 몇번 부딪힌 같은과 후배가 떠올랐다. 그는 광부의 아들로 도계가 집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앞뒤 가릴 것도 없는 나는 뭘 믿고 그렇게 무모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시절 나의 어리석음은 상대를 찾을 수 없다. 지도를 보니 도계는 삼척에서 가까웠다. 강남고속터미널에서 삼척행 버스에 올랐다. 삼척에서 도계행 버스를 찾으니, 웬걸 지나쳐 온 동해가 출발지였다. 왜 그때는 전화로 문의할 생각을 못했을까. 촌놈의 어두운 세상 물정 때문일까. 아니면 시골뜨기의 아둔함이었을까. 도계에 도착하니 이른 겨울해는 서산 너머로 숨었고, 나는 고픈 배를 움켜쥐고 역전앞 중국집으로 향했다. 곱배기 짬뽕을 후루룩거리며 나는 주인아주머니에게 후배를 물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짓이었지만, 80년대 초 만해도 석탄을 캐네는 산골 소읍의 대학생은 드물었다. '저 개울 건너 전두리 이장댁 둘째인 것 같은데' 지금도  아주머니 입에서 나온 마을 이름이 선명하다. '전두리' 나는 읍내를 가로지르는 계곡을 건너 골목을 헤매면서 후배의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꿈같이 후배가 어느 집 대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닌 밤 중에 홍두깨라고 저 먼 서해의 곡창지대에서 강원의 내륙인 첩첩산중 탄광촌을 찾아 온 선배가 어이없었을 것이다. 아니 도깨비로 보였을 것이다. 역전의 여인숙에 방을 잡아 주고 후배는 내일을 약속했다. 그렇다. 그때 나는 앞으로 전개 될 삶의 막막함에, 낯선 산골 소읍의 역 구내의 난로가에 앉아 청색의 손바닥을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그 후배는 지금 덕유산 속에서 한살림 회원으로 유기농 오미자 농사를 짖고 있다. 내가 섬으로 들어온 지 6년이 다가온다. 그동안 후배를 만나지 못했다. 봄꽃이 피는대로 덕유산 자락 함양으로 발걸음을 서둘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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