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똥꽃
지은이 : 전희식·김정임
펴낸곳 : 그물코
이 책의 공동저자 전희식과 김정임은 모자 관계다. 부제 '농부 전희식이 치매 어머니와 함께한 자연치유의 기록'이 말해주듯 농부 아들이 여든여섯의 치매 노모와 살아가는 1년간의 기록으로서 한 농부의 일기다. 이 땅은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노령화가 진행되는 사회다. 2006년 기준 노인인구가 460만명으로 전체인구의 9.5%를 차지한다. 거기다 65세 이상의 노인 가운데 8.3%인 약 36만명이 치매를 앓는다고 한다. 자식사랑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 땅의 부모님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병이다. 그것은 본인의 고통보다는 병 수발에 피멍드는 가족의 아픔에 미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이 땅의 늙고 병든 치매걸린 노인들은 '관리'의 대상일 뿐이다. 저자가 어머니를 모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점은 '존엄'이다. 어머니는 10년전 눈길에 미끄러져 고관절이 바스러지는 사고를 당한 이후 대소변을 못가리고, 귀도 들리지 않아 누워 지낼 수밖에 없었다. 큰형님 댁의 3층 외딴방에서 두문불출하는 어머니의 고통을 가슴으로 받아들인 저자는 전북 장수 산골의 빈집을 수리하여 어머니를 모신다. 산골의 자연생활을 접하시면서 어머니는 자신감을 회복한다. 그리고 서서히 예전의 기억들이 재생되는 감동적인 한편의 드라마가 이 책의 내용이다. 저자의 치매걸린 어머니에 대한 '존엄'이 드러난 구절을 살펴보자. '어머니 굴절된 삶의 현재적 표현이 지금의 치매다. 오늘의 어머니를 인정하려면 고른 삶 뿐만 아니라 굴절된 삶도 함께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분리될 수가 없는 것이다. 치매로 드러나지 않았다면 어머니 인생은 일찍 사라졌을 수 있다.(99쪽)'
2년전 구입한 책을 뒤늦게 잡으면서 저자의 이름이 자꾸 눈에 밟힌다. 낯설지는 않으나 기억이 또렷하지 않다. 그런데 145쪽을 읽어나가면서 아! 그렇구나. 하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20여년전 어머니와 단칸반 생활을 하면서 저자는 조직원들과 새벽까지 비밀문건을 꺼내 놓고 논쟁을 벌인다. 조직원들이 새벽의 어스름에 묻히며 사라지자 어머니는 빨갱이 남편을 떠 올리며 목숨을 내걸고 자식의 과업을 가로 막는다. 그렇다. 전희식은 90년대 초 남한 노동운동의 최대정파인 인민노련이 합법공간에 모습을 드러낸 '한국노동당'의 부위원장이었다. 민중당이라는 간판을 걸고 '92년 인천에서 국회의원 선거 후보로 나섰다. 80년대 중반 그 유명한 대우자동차 노동운동을 이끈 주역으로 인천 노동운동의 희망이었다. 열혈 노동운동가 전희식이 10여년 전 생태주의 농사꾼으로 자신의 삶을 바꾼 것이다. 현재 전희식은 전국귀농운동본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치매걸린 어머니에 대한 저자의 헌신적인 '존엄'은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를 독자에게 안겨준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엄두가 안난다. 나에게도 치매는 한때 집안의 골치거리였다. 2007년 이른 봄. 아버지한테 갑작스런 치매가 찾아왔다. 치매에는 두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며느리형 치매는 환자가 다소곳하여 남에게 큰 피해가 없는 반면, 장군형 치매는 마구잡이 폭력을 행사하여 주위 사람들이 곤욕을 겪게 된다. 섬 생활을 하다 주말을 맞아 김포 집에 들른 나에게 아버지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동안 아버지는 1년에 한두달 간 병원에서 몸을 추스르시면 일상생활을 무리없이 영위하셨다. 그런데 같은 병실환자들에게 도가 지나치신 행동을 하신다는 말을 전해 들었는데, 강제퇴원을 당하신 것이다. 내가 집에 막 들어서자 어머니는 당혹스런 얼굴에 눈물을 흘리시며 집뒤 장독대에서 쫒겨다니시는 것이 아닌가. 웃통을 벗어던진 아버지가 입에 담지 못할 허텅거리를 치시며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뒤를 쫒는 것이 아닌가. 앞뒤 가릴 여유가 없었다. 나는 아버지를 차에 태우고 곧장 사회복지 전문요양원으로 향했다. 석달간 요양원 생활을 하시다 아버지는 눈을 감으셨다. 다음해 겨울. '한강신도시 르네상스 김포 건설'로 철거민이 된 나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주문도에 터를 잡았다. 그리고 아버지를 모과나무에 수목장으로 모셨다. 일생을 흙과 함께 사신 어머니는 집앞 텃밭을 가꾸시거나, 동네 할머니들과 바닷가에 나가 조개나 게를 잡는 소일거리에 신이 나신 모습이다. 공휴일 아침 밥상. 어머니가 앉으신 채 무릎걸음으로 뒤로 물러 나신다. '어제, 오늘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니, 어지럽네. 나는 이따 밥 먹을란다.' 방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는 이불을 쓰고 누우신다.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다. 설거지를 마친후, 양송이 스프를 끊인다. 어머니는 얼마나 몸이 아프신 것일까. 자식 앞에서 내색을 안 하신다. 점심 때가 지나서야 어머니는 간신히 스프 몇 스푼을 뜨신다. 나는 점심 독상을 차린다. 밥알이 껄끄럽다. 그렇다.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니라, 부끄럽게도 얹혀 살고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