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히스패닉 세계
엮은이 : 존 H. 엘리엇
지은이 : 앙구스 메케이 외
옮긴이 : 김원중 외
펴낸곳 : 새물결
주민자치센터 공용도서관에 비치할 책이 도착했다. 제법 많은 분량이다. 표제만 훑는데도 입가에 슬며시 잔웃음이 인다. 서해의 외딴섬이라 나는 잡고 싶은 책을 100% 온라인으로 주문한다. 건방진 소리 같지만 솔직히 주민자치센터의 책들은 장식용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나의 눈길을 잡는 책들이 한두권 눈에 띤다. 이번에 구입한 책들을 보고,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십여권이 넘는 책값을 아낄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담아 두었던 실학자(박제가, 유형원, 정약용, 박지원)의 고전들이 수두룩했다. 하지만 나는 먼저 이 책을 집어들었다. '히스패닉' 많이 낯이 익지 않은가. 표지 그림은 플라멩고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인 것 같다. 하드커버에다 부피도 500쪽에 가까워 꽤나 묵직하다. 책은 히스패닉 세계의 역사와 문학, 미술, 종교와 가족에 대한 종합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전문가들이 분야별로 히스패닉 세계를 독자에게 보여주는데 쉽지만은 않은 책읽기였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도판과 그림, 사진이 많이 실려있어 다행히 그 세계에 무지한 나는 간신히 책씻이를 할 수 있었다.
히스패닉(Hispanic)은 역사적으로 고대 이베리아 반도와 그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오늘날은 주로 미국에 거주하는 라틴 아메리카 출신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스페인과 라틴 아메리카를 아우르는 '히스패닉 세계'는 세계에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한다. 전세계에서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인구가 3억2천만명이고, 2000년 미국 인구조사에서 히스패닉은 백인 다음으로 인구가 많아 2위를 차지했다. 히스패닉의 이주와 출산은 폭팔적으로 증가해 2015년이 되면 미국에서 가장 거대한 인종집단을 형성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에 히스패닉 문화에 대한 정형화된 부정적 시각은 비지성적, 반자본주의적, 반노동적인 것으로부터 미래지향적인 태도의 부재, 가족중심적 사고방식, 운명론적 세계관 등이 있다. 이는 현재에도 중남미계 이민자들이 끊임없이 미국에 불법 이주하여 정착한데서 오는 주류 백인 사회의 위기의식의 반영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스페인인은 얼굴 표정에 특색이 있다. 즉 음울하고 내면 세계에 침잠해 있는 듯한 표정 말이다. 역사적으로 스페인은 유럽이면서도 비유럽적인 독특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것은 711년 무슬림이 이베리아 반도 전역을 제국화한 것이다. 레콩키스타 - 무슬림이 지배하는 영토에 대한 십자군의 재정복 - 의 종결은 1469년 카스티야의 이사벨과 아라곤의 페르난도의 결혼- '가톨릭 공동왕' - 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1492년 1월 2일 무슬림의 마지막 소왕국 그라나다가 항복한다. 레콩키스타의 종결은 신대륙의 발견으로 이어진다. 콜럼버스가 국왕에게 제안한 내용은 이렇다. '동쪽의 인도와 중국에서 친기독교적인 몽골의 칸과 계약을 체결하고, 그에게 가톨릭 신앙을 가르친 후 동방기독교와 서방기독교가 힘을 합쳐 무슬림을 격파하고 예루살렘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그라나다 정복으로 십자군 정신이 충만한 '가톨릭 공동왕'의 흥미를 끈 것이다. 이에 콜럼버스의 '서인도제도 사업'은 육로가 아닌 서쪽 해로로 동방을 향해 1492년 8월 출발했다.
1936 ~ 1939년의 스페인 내전은 당대의 지식인들이 인민전선 공화정부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걸고 총을 들었다. 조지 오웰, 앙드레 말로, 어니스트 허밍웨이, 파블로 네루다, 로버트 카파 등. 거기다 3만 5천여명의 세계의 젊은이들이 국제여단이라는 이름으로 파시즘에 대항하였으나, 인민전선의 분열로 패배한다. 이는 프랑코 파시즘의 37년 철권통치를 열어주게 되었다.
히스패닉 문화를 애기하면서 라틴 아메리카 소설을 빼놓을 수 없다. 흔히 마술적 리얼리즘이라 불리는 이 사조의 노벨상을 수상한 대표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1508년 출간된 '가르시 로드리게스 데 몬탈보'의 기사소설 '아마디스 데 가울라'를 특별히 애호한다고 밝혔다. 이는 라틴 아메리카의 현대소설이 거둔 엄청난 성공은 스페인 황금 세기의 고전작가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하늘의 별처럼 많은 라틴 아메리카의 세계적 작가들을 생각나는 대로 훑어보자. 멕시코의 옥타비오 파스, 카를로스 푸엔테스. 콜롬비아의 가르시아 마르케스.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 그리고 올해의 노벨상 수상자인 페루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이 책 3부 '창조적 다원성'에서는 스페인 각 지역들의 상이한 특징과 스페인 전체에 대한 공헌을 조명한다. 정치·종교·언어에서 수백년 동안 스페인의 중심으로 국가의 구심점이 되어 온 카스티야-마드리드와 상공업과 지방자치주의의 중심으로 카탈루냐-바르셀로나가 역사적으로 날카로운 대립관계를 유지한다. 두 지역은 스페인의 아픈 역사와 연결된다. 카탈루냐 사람들은 독립을 쟁취하려 투쟁했고, 프랑코 군사독재 정권시절 탄압의 대상으로 카탈루냐어 사용이 금지되었다. 따라서 중앙정부에 대한 그들의 반목의 깊이는 말할 수 없이 깊었다. 그 민족적 대립각은 축구에서도 잘 나타난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라이벌전을 '엘 클라시코'라고 부른다. 세계 최고 리그를 가진 스페인이지만 월드컵에서는 변방에 불과했다. 그들은 월드컵에서 결승에 진출도 못했다. 그런데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우승하여 명실상부 세계 최고 반열에 올랐다. 그것은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통합과 상생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다. 말그대로 '스페인 무적함대' 시대가 축구에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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