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대빈창 2025. 2. 20. 07:30

 

책이름 :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지은이 : 김기협

펴낸곳 : 돌베개

 

보름 만에 읍내에 발걸음을 했다. 독서여정은 다섯 권의 『해방일기』 상편을 반납하고, 하편 다섯 권을 대여할 예정이었다. 신간코너에서 옛그림에 관한 도서 네 권을 발견하고, 메모된 책들을 뒤로 물렸다. 하지만 무엇인가 아쉬웠다. 역사학자의 저서에 미련이 남았다. 아직 못 잡은 군립도서관에 비치된 저자의 단행본 한 권을 마저 대여했다. 역사학자의 신간 『오랑캐의 역사』를 희망도서로 신청ㆍ대여한 것이 첫 번째 책이었다. 한국 사회의 국수주의적 역사관을 비판한 『밖에서 본 한국史』, 뉴라이트의 본질과 현상을 전방위적으로 비판한 『뉴라이트 비판』을 연이어 손에 펼쳤다.

내일모레 읍내 발걸음을 하면서 미루었던 『해방일기』 하편 다섯 권을 마저 대여해야겠다. 합리적 보수주의 역사학자 김기협의 새로운 저서가 나오는대로 군립도서관 희망도서를 신청할 것이다. 역사에세이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는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조선 망국 과정을 복기했다. 저자는 조선의 망국을 유교정치의 쇠락과 지배층의 권력 사유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문명사적 전환과 맞물려있다고 파악했다. 17세기부터 1910년까지 총 3부에 나누어 조선의 쇠퇴와 망국 과정을 살폈다. 프롤로그에서 말했다. “일본이 조선의 약점을 파고든 것처럼 일본의 약점을 냉혹하게 파고든 열강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은 자력 근대화의 기회를 가질 수”(22쪽) 있었다.

1부 조선은 어떻게 시들어 갔는가(17-18세기). 조선후기 유교질서 퇴화는 ‘권력의 사유화’, 권력의 공공성은 사회 내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지키기 위한 필수적 기반 요소. 권력의 공공성과 도덕 정치의 원리가 퇴화한 조선을 19세기의 변화에 무기력. 임진왜란이후 17세기 조선의 왕권 쇠퇴는 국가 기본 기능의 퇴화, 당쟁이 정책 결정보다 정권 쟁탈에 치우치면서 정치의 안정성 붕괴. 송시열을 영수로 한 노론 집단은 하나의 파벌을 넘어 국왕 중심의 드러난 권력 조직과 병립하는 감춰 진 권력조직 사림. 능력과 노력을 기울였지만 유교국가의 틀이 망가며 국운을 되돌리지 못한 숙종에서 정조까지 18세기 임금들. 왜란을 겪고 나서 호구 파악이 어려운 상황에서 파악이 쉬운 농지를 부과 대상으로 하는 수취방법 대동법. 초인적 능력과 노력으로도 회복시킬 수 없을 만큼 망가진 조선 왕조의 쇠퇴로 정조는 과로사.

2부 조선은 어떻게 쓰러져갔는가(19세기). 우리 민족사회의 분단상황 등 남북의 구조적 문제들은 100년 전의 충격에서 유래. 조선의 중국에 대한 종속성은 1945년 이후 한국의 미국에 대한 종속성에 비해 미약. 대한제국은 국가의 성격이 정상적 상태로부터 벗어난 조선왕조와 식민지 시대 사이의 과도기. 조선의 망국에서 천하 체제의 붕괴는 국권상실 이전에 문명의 단절. 고종은 암군으로 국가 중흥에 공헌할 만한 양심적이고 유능한 인재들의 국가 운영의 기회 박탈.

3부 조선은 어떻게 사라졌는가(대한제국기). 일본이 고종의 황제 칭위를 승인한 것은 사대관계의 청산과 입헌군주제라는 목적을 추구. 대한제국 건립은 권력 사유화의 절정으로 의정부가 유명무실해지고 궁내부가 비대해진 것이 단적인 징표. 일본 근대화의 결정적 요인은 개항에서 유신에 이르기까기 14년간 외부의 위협을 받지 않았고, 외세의 과도한 작용이 없어 순조롭게 새로운 체제를 형성. 중국과 한국의 유교질서는 중간 권력의 성장을 억제하고 성장보다 분배에 역점을 둔 사회주의 성향의 체제. 아관파천과 대한제국 설립은 기본적으로 반동 쿠데타의 성격. 조선왕조 멸망이라는 민족사회를 비참한 상태로 몰아넣은 고종의 극단적 권력 사유화.

합리적 보수주의 역사학자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한국인들, 특히 엘리트 계층 한국인들의 도덕성 수준이 20세기에 들어와 형편없이 떨어진 것은 국가가 망하고 이민족의 악질적 지배를 받은 때문이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엽기적 수준으로 부도덕한 정치―경제 시스템에 빠져있다. 일본의 야욕이 패전으로 좌절되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한국이 독립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식민지인의 의식구조를 벗어나야 독립국이 되고 건강한 사회”(299-300쪽)를 이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