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홀림

대빈창 2026. 2. 13. 07:30

 

책이름 : 홀림

지은이 : 성석제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20여년 전 손에 넣은 작가 성석제(成碩濟, 1960- )의 소설집 4권, 엽편葉篇소설 2권에서 다섯 번째로 손에 펼친 책이다. 내가 잡은 『홀림』은 1999년 초판본으로 단편소설 8편으로 구성되었다. 문학평론가 김만수는 해설 「소피스트의 세계―놀이와 해방의 산문」에서 “성석제의 소설에는 느끼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비극성, 생각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희극성”(252쪽)이 뒤섞였다고 말했다.

「꽃 피우는 시간―노름하는 인간」, 주인공 ‘나’는 사업상 바닷가 항구도시 K시를 방문했다. K시는 최첨단의 유행과 고전이 함께하는 도시였다. K시 전자상가에서 최신형 만년필형 녹음기를 샀다. K호텔에서 한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도박사 피스톨 송의 초청 강연이 있었다. 참가비는 30만원이었다.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친구 K는 군대동기였다. 우연찮게 초청장을 무료로 얻어 입장 했다. 도박사의 특별강연을 비밀리에 녹음한 내용을 풀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K시민이라면 누구나 초청장을 받을 수 있었다.

「해방―술 마시는 인간」, 기자였고 모범교사였던 사십대 중반의 주인공 그는 찻집에서 세 명의 사내와 주인 그리고 울고 있는 여자에게 술에 연관된 자신의 인생을 술회했다. 그는 조부·부친으로 이어지는 주태배기 집안이었다. 교사때 만난 서너살 위의 술집여자 재떨이와 결혼하여 달동네에 살림을 차렸다. 재떨이와 헤어진지 오년, 그는 정신과 치료도 받고 단주협회에도 들어갔다. 일년에 한번 재떨이와 헤어진 날, 오늘은 술을 마시는 날이었다.

「소설 쓰는 인간」, 통신 판매점의 총무로 일하는 주인공 나는 새벽 포장마차에서 제비족 고교동창을 만났다. 친구의 사정으로 사무실 물건 쌓아두는 창고를 무도장으로 변경시켰다. 나는 점차 춤에 미쳤고, 진짜 춤꾼이 되어 왕제비가 되었다. 춤방은 오후 두시부터 남편들이 퇴근하기 전까지가 황금시간대였다. 오십도 안 되어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자신의 경험을 소설로 쓰려고 한다. 제목은 ‘왕제비의 인생―내 인생을 바꾼 호두알 두 쪽’으로 정했다.

「홀림」, 표제작은 자전적 소설로 읽혔다. 소설의 도입부는 한 아이가 차문을 열다 멈칫한다. 아이는 순식간에 스무 걸음 떨어진 곳에 서있는 아이에게 홀린 것이다. 아이는 작가의 분신으로, 작가의 길에 들기까지의 매혹적인 과정을 담았다. 소설은 두 단락으로 구성되었다. 마지막 단락은 ‘웃었다’ 한 단어였다.

「협죽도 그늘 아래」, 단락이 시작되는 문장은 ‘한 여자가 앉아 있다’로 반복되었다. 협죽도 그늘 아래, 시멘트 의자에 앉아 있는 여자는 자신의 칠순 잔치에 왔다가 돌아가는 사람들을 배웅하러 나왔다. 여자는 스무살에 가시리佳詩里로 시집왔다. 신랑은 처가에서 신행을 한 뒤 곧바로 서울에 있는 학교로 향했다. 전쟁이 터졌고 남편은 유엔군 군속으로 통역을 맡았다. 신랑은 전쟁중에 행방불명되었고, 여자는 십년 동안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산지기로 있던 노인이 부고를 전했다. 여자는 시집에서 나왔지만 가시리 가는 길목의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붐빔과 텅 빔」, 형과 나는 연년생이다. 형은 나이보다 한 해 일찍 학교에 들어갔고, 나는 나이를 한해 늦춰, 형이 학교 삼년 선배였다. 출세지향주의 형은 대학을 졸업하고, 집안 논밭까지 팔아 출세가도에 정진했다. 하지만 허무하게 암에 걸려 생을 마감했다. 형의 뒤를 쫓는 동생의 별볼일 없는 삶을 대비시켰다.

「방」, 책장이 사방 벽을 가득 채운 방, 나는 그 방에서 책을 한 권 빌렸고 돌려주지 못했다. 방 주인은 셋 딸을 두었는데 나는 첫딸과 연인이었다. 그녀가 시집을 갔지만, 그 방을 여전히 드나들었다. 그녀의 동생의 동생이 나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하지만 그녀도 내가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주인공은 생각했다.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이 불확정투성이가 아닐까.

「이무기」, 주인공 마흔셋 곽영필은 반푼이다. 다섯 용이 하늘로 올라가다 굳어서 봉우리가 되었다는 마을 뒷산 오봉산. 아래쪽에 있던 저수지가 마을 앞으로 옮겨왔는데, 실연당한 처녀들이 많이 빠져 죽었다. 오봉산 때문에 마을 이름이 오봉리였다가, 저수지가 더 유명해져서 오룡리로 바뀌었다. 어릴 적 손님을 앓고 바보가 된 영필과 오룡리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좌충우돌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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