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즐거운 소란

대빈창 2026. 2. 11. 07:30

 

책이름 : 즐거운 소란

지은이 : 이재무

펴낸곳 : 천년의시작

 

산그늘 두꺼워지고 흙 묻은 연장들 / 허청에 함부로 널브러지고 / 마당가 매캐한 모깃불 피어오르는 / 다 늦은 저녁 멍석 위 둥근 밥상 / 식구들 말없는, 분주한 수저질 / 뜨거운 우렁된장 속으로 겁없이 / 뛰어드는 밤새 울음. / 물김치 속으로 비계처럼 둥둥 / 별 몇 점 떠 있고 냉수 사발 속으로 / 아, 새까맣게 몰려오는 풀벌레 울음 / 베어문 풋고추의 독한, / 까닭 모를 설움으로 / 능선처럼 불룩해진 배 / 트림 몇 번으로 꺼트리며 사립 나서면 / 태지봉 옆구리를 헉헉, / 숨이 가쁜 듯 비틀대는 / 농주에 취한 달의 거침 숨소리 / 아, 그날의 위대했던 반찬들이여

 

「위대한 식사」의 전문이다. 위 시를 어디선가 눈동냥하고, 시집 『위대한 식사』(세계사, 2002)를 손에 넣었다. 다행스럽게 10여년이나 묵은 시집은 온라인 서적에 살아 있었다. 그리고 몇 년의 세월이 흘렀고, 시선집 『얼굴』(천년의시작, 2018)을 손에 펼쳤다. 시인 이재무(1958- )의 열세번째 시집 『즐거운 소란』(2022)는 나에게 세 번째 손에 잡힌 시집이었다.

시인은 1983년 『삶의 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시는 부드럽고 완곡하며 애상적이고 낭만적인 정서와 어법 등의 일반적인 서정시의 특징은 찾아볼 수 없다. 강인하고 우렁차며 활기차고 낯선 감각과 사유의 깊이로 시인의 시선은 항상 현실을 향했다. 시인은 서정시에 대한 재래적 관념을 완전히 전복시켰다고 문단에서 평가받았다.

시집은 7부에 나뉘어 156편이 실렸다. 시편들은 거의 한쪽으로 짧았지만 많은 분량으로, 해설까지 200쪽이 넘는 부피를 자랑했다. 문학평론가 고형진은 해설 「온몸으로 밀고 나간 묵직한 서정」에서 말했다. “부드럽고 유약한 감성으로 세상 저편의 세계를 노래하는 것으로 여겼던 서정시에서 현실적 삶의 리얼리티를 느끼고 시인의 시적 체험을 고스란히 경험적으로 묵직한 감동”(212쪽)을 받게 한다. 마지막은 두 연으로 구성된 「곡우」(28-29쪽)의 1연이다.

 

마른논에 물 들어오자 / 덩달아 부지런 떠는 것들이 있다 / 물꼬 따라 흘러들어 오는 물을 타고 / 구름들이 겅중겅중 걸어 들어오고 / 삼동 내 적적해하던 논둑 미루나무들 / 슬그머니 가지 뻗어 오는데 / 앞산 그늘도 질세라 더운 몸을 담궈 온다 / 뭉쳐 있던 흙의 근육 풀리자 / 벌레들 태어나 물무늬 일으키고 / 공중을 나는 새 날개짓 / 자취 남겼다 사라진다 / 밤에는 문지방 닳도록 찾아온 / 별과 달 무논의 한지에 시문詩文 짓고 / 어둠의 무명을 찢는 푸른 개 / 울음소리 첨벙첨벙 뛰어들기도 한다 / 마른논에 물 들어오자 내외하던 / 땅과 하늘 금슬 좋은 한 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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