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학파 3

신강화학파 33인

책이름 : 신강화학파 33인 지은이 : 하종오 펴낸곳 : 도서출판 b 故 신영복(1941-2016) 선생은 『나무야 나무야』에서 강화도의 서쪽 끝 하일리霞逸里을 찾아 지식인의 참된 자세에 대해 썼다. “하곡 정제두(霞谷 鄭齊斗, 1649 ~ 1736년)는 당쟁이 격화되던 조선중기 서울을 떠나 진강산 남쪽 기슭 하일리에 터를 잡았다. 250년 강화학파江華學派의 시작이었다. 공소空疎한 논쟁에 휘말려 파당을 일삼는, 학문을 영달의 수단으로 삼는 주자학과 결별한 것이다. 강화학파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지식인의 자세를 준엄하게 견지했다. 그들은 인간의 문제와 민족의 문제를 가장 실천적으로 고민했던 학파였다.” 강화도가 낳은 강화학파는 내가 살아왔고 살아갈 지역 사회에 대한 자긍심을 일깨웠다. 2013년 서울을 떠나..

영재寧齋 선생을 찾아 뵙다.

선생은 양지바른 낮은 둔덕에서 후손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다. 산자락의 여기저기 자리 잡은 농가들 사이 고샅을 따라 막다른 골목에 이르자 나들길 4코스 해넘이길 표지석이 서있었다. 사석으로 자연스럽게 쌓은 계단을 오르자 계단참에 일주문처럼 아름드리 밤나무가 양옆에 도열했다. 가을이 익어가며 밤송이가 아람을 벌려 밤알을 잘 손질된 잔듸에 떨구었다. 다시 계단을 오르자 왼편은 사철나무가 일렬로 도열해 묘역을 구획 지었다. 김장채소 텃밭을 마당으로 삼은 구옥(舊屋)이 석축에 등을 기대었다. 오른편은 고라니 방책으로 그물을 두른 텃밭에 고추와 들깨가 심겼다. 봉분에 밝고 환한 햇살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묘 뒤편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처럼 가는 줄기 꼭대기에 솔잎을 매단 소나무 다섯 그루가 푸른 하늘..

하일리의 저녁 일몰에서 내일 아침의 일출을 읽다

나는 토산품판매센터에서 신터미널을 끼고 찬우물고개를 넘어 2번도로를 탔다. 인산저수지 갈래길에서 양도면소재지 하일리로 향하는 301번 도로에 들어섰다. 답사여정에서 나의 발길이 미치지 못한 양도와 화도로 향하는 지름길이었다. 양도면 중앙에 해발 443m 진강산이 자리잡았고, 그 여맥이 사방으로 뻗어 낮은 구릉을 이루었다. 남쪽에 비교적 넓은 들녘이 자리잡았다. 양도의 진산 진강산이 자리잡은 형세가 강화도의 뭇산과 달라 이런 전설이 내려온다. 아주 먼 옛날, 따뜻한 남쪽을 향해 맏형 마리를 필두로 혈구, 고려, 진강, 능주 다섯형제가 길을 나섰다. 한반도에 이르렀을 때 먼저 자리잡은 삼형제 즉 삼각산(三角山)이 있어 형제는 육지가 코앞에 보이는 서해에 자리잡기로 했다. 먼저 맏형인 마리(摩利)가 뭍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