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신강화학파 33인
지은이 : 하종오
펴낸곳 : 도서출판 b
故 신영복(1941-2016) 선생은 『나무야 나무야』에서 강화도의 서쪽 끝 하일리霞逸里을 찾아 지식인의 참된 자세에 대해 썼다. “하곡 정제두(霞谷 鄭齊斗, 1649 ~ 1736년)는 당쟁이 격화되던 조선중기 서울을 떠나 진강산 남쪽 기슭 하일리에 터를 잡았다. 250년 강화학파江華學派의 시작이었다. 공소空疎한 논쟁에 휘말려 파당을 일삼는, 학문을 영달의 수단으로 삼는 주자학과 결별한 것이다. 강화학파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지식인의 자세를 준엄하게 견지했다. 그들은 인간의 문제와 민족의 문제를 가장 실천적으로 고민했던 학파였다.”
강화도가 낳은 강화학파는 내가 살아왔고 살아갈 지역 사회에 대한 자긍심을 일깨웠다. 2013년 서울을 떠나 강화도에 정착한 시인은 다음해 『신강화학파』를 냈다. 『신강화학파 33인』은 『신강화학파 12분파』에 이은 세 번째 연작 시집이다. 나는 12에서 십이간지를, 33에서 3․1독립운동 민족 대표자를 떠올렸지만 시인은 어떠한 통념에도 의존하지 않았다.
시인은 “한 편의 시에 한 인간의 일생을 담아낼 수 있는 창조적 고투를 해야 한다는 생각”(5쪽)도 해왔다. 부 구분없이 63편이 실렸고, 해설은 여지없이 문학평론가 홍승진의 「한 편의 시에 한 사람의 삶을 담을 때까지」였다.
옆집 남자아이 / 마지막 풍물재비 / 이웃마을 아무개 시인 / 소를 가장 잘 기르는 목부 / 입 다문 친구 노래꾼 / 외지인 호박농農 / 토박이 고구마농農 / 우쭐거리는 대목수 / 배수구 만드는 미장이 / 자급자족하는 안주인 / 중노인 고추농農 / 건축현장 하루 품삯 버는 사내 / 잔반을 들고양이 주는 독거노인 / 삼포에 울을 친 인삼농農 / 계사鷄舍의 참새 쫓는 양계업자 / 평생 농사짓다 몸져 누운 어르신네 / 시인 논을 경작하는 옆논 주인 / 해마다 씨 뿌리는 순무농農 / 개구리 걱정하는 벼농사꾼 / 붕어와 대화하는 수로 관리자 / 뒷산기슭 벌통 양봉가 / 매미가 찾지 않는 수종樹種 심는 정원사 / 이규보․이건창 옹 술안주 마련하는 오이농農 / 주민투표에서 신강화학파 몰표 받은 신임 이장 / 이웃 중늙은이 밤농農 / 채소 잘 키우는 비닐하우스 원예농農 / 염전에서 한평생 일한 상노인 염부鹽夫 / 여섯 배로 수확하는 마늘농農 / 미나리꽝 농장주 / 이웃동네 사내 상여꾼 / 육순사내 산역꾼 / 강화로 시집 온 베트남 새댁 / 이웃 여자아이
시집에 등장하는 신강화학파 33인이다.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시편들을 이렇게 구분했다. 첫 시 「신강화학파 유래담」(이하 시 제목에서 ‘신강화학파’는 생략)에서 「야담野談, 전편前篇」까지는 일하는 삶과 예술행위를 시적으로 결합시키고 있는 작품. 「야담野談, 전편前篇」에서 「야담野談, 후편後篇」까지는 단독적 인간의 삶이 어떠한 방식으로 형상화되는지를. 「야담野談, 후편後篇」에서 「후일담」까지는 차츰 과거 속으로 사라져가는 인물을 소환했다. 시인은 강화도에 정착한 후 매년 시집을 펴냈다. “내가 가진 것은 시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랐던 저 청년 시절부터 내가 이웃들보다 더 가진 것이 있다면 시뿐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지금까지 나는 줄곧 시만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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