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지은이 : 밀란 쿤데라
옮긴이 : 이재룡
펴낸곳 : 민음사
20세기를 대표하는 소설가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1929-2023)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이제 잡다니. 출판사 《민음사》는 2013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밀란 쿤데라의 전집을 완간했다. 소설 10권, 에세이 4권, 희곡 1권으로 모두 15권이었다. 전집의 모든 표지그림은 르네 마그리트(Renē Magritte, 1898-1967)의 작품이 쓰였다. 환상적인 조합이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국내에서 1988년 단행본이 출간되었다.
내가 잡은 책은 국내 출간 30주년 및 국내 총 판매량 100만부 달성 기념 리뉴얼 단행본이었다. 2020년 12월 4판 18쇄였다. 총 131쇄를 찍은 판이었다. 광고인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잡고, ‘성과 사랑, 정치와 역사, 신학과 철학까지 아우르고 있는 한 편의 소설이 주는 감동의 무게’라는 찬사에 끌려 군립도서관의 밀란 쿤데라를 검색했다. 문학에 대한 열정을 풀어 낸 에세이 『커튼』에 이은 두 번째 책이다.
밀란 쿤데라는 체코슬로바키아 브르노에서 태어났다. 30대 후반, 1967년에 첫 소설 『농담』을 발표했다. 1968년 체코 ‘민주화의 봄’에 참여한 지식인으로 탄압을 받았다. 공산당에서 축출되고, 작품은 압수당했으며 금서가 되었다. 75년 프랑스로 망명해 강의와 창작을 이어갔다. 그의 국적은 79년 박탈당했다. 그는 “자신의 내밀성을 상실한 자는 모든 것을 잃은 사람”으로 30여년 동안 언론을 비롯한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려왔다. 쿤데라는 나이 아흔이던 2019년에 체코 국적을 회복했다.
‘90년대 대학가의 필독서’였던 책은 나의 안중에도 없었다. 나는 여적 스무여 권 남짓한 외국 소설을 잡았을 뿐이다. 정서상 몰입이 어렵다는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그 시절 나는 공장노동자였다. 공단지대 지하방에 풀어진 나의 이삿짐은 두세 권의 노동소설이 고작이었다. 창문을 열면 서해 바다가 들어오는 책상에 앉아 516쪽의 양장본 소설을 펴들었다. 책은 7부로 구성된 달랑 소설뿐이었다. 서문, 옮긴이의 말, 해설 등 어느 것 하나 없다. 표지 그림의 개는 카레닌으로 토마시가 테레자에게 선물한 개다. 테레자는 프라하로 돌아올 때도 카레닌과 함께 했다. 토마시와 테레자는 암으로 죽어가는 카레닌을 안락사 시키고 정원의 두 그루 사과나무 사이에 묻어주었다.
소설은 여섯 번의 우연이 겹치는 고향의 작은 시골 술집에서 서빙하던 테레자와 명망 높은 외과의사 토마시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시작되었다. 테레자가 『안나 카레니나』와 무거운 여행 가방을 들고 프라하의 토마시를 찾아갔다. 전처와 이혼한 토마시는 사랑을 부담스러워하며 수많은 여자와 잠자리를 갖는 ‘가벼운 삶’의 바람둥이였다. 토마시의 정부로 자유연애주의자 화가 사비나는 조국과 역사의 무게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구의 소유자였다. 소설에 단어 키치kitch가 자주 등장했다. 키치로부터 벗어나려는 사비나의 노력은 그녀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격분했다. “나의 적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키치예요!"(418쪽) 프랑스 과학자 프란츠는 사비나의 또다른 애인이다. ‘혁명에 대한 환상은 오래전에 시들었으나, 그가 혁명에 있어서 가장 찬탄했던 것이 잔존하는 나라에서 그녀가 온 것이다.’(174쪽) 프란츠는 전 세계 지식인들의 캄보디아 행진에 참가했다가 어이없게 불량배와 싸우다 죽었다.
1984년 발표된 소설의 배경은 체코의 민주화 운동과 소련 침공으로 이어지는 ‘프라하의 봄’이다. 소설은 무거운 역사와 개인적 트라우마를 짊어진 네 남녀의 삶과 사랑을 그렸다. 제네바에서 사 년을 지낸 후 사비나는 파리로 왔으나 여전히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203쪽)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쁜 소년이 서 있다 (0) | 2023.11.21 |
---|---|
필로소피 랩 (0) | 2023.11.20 |
신강화학파 33인 (1) | 2023.11.16 |
죽음의 역사 (1) | 2023.11.15 |
미래가 불타고 있다 (1) | 2023.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