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4

까치와 고양이

주말 이틀 내내 빗줄기가 퍼부었습니다. 89mm라는 5월 중순 역대급 강우량을 기록했습니다. 줄기차게 쏟아 붓는 봄비로 대빈창 다랑구지의 무논이 빗물로 흥건했습니다. 새로운 주말을 시작하며 일찌감치 아침 산책에 나섰습니다. 하늘은 그래도 부족하다는 듯 잔뜩 찌뿌듯했습니다. 허공을 한 주먹 쥐었다가 손바닥을 벌리면 물기가 묻어날 것 같았습니다. 고구마와 고추 묘가 한창 심겨지고 있는 밭과 봉구산자락 사이를 이리구불 저리구불 옛길이 흘러갔습니다. 돌아오는 산책에서 낮은 오르막에 올라서면 대빈창 언덕 우리집 옥상의 태양광 패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이제 집에 거의 다 왔습니다. 뒷집 뒤울안으로 눈길을 돌리자 까치가 머뭇머뭇 걸음을 옮겼습니다. 까치를 예의 주시하던 재순이가 잔뜩 부르튼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습니..

별식別食 하는 날

휴일 햇살이 자글자글 했습니다. 혼탁한 대기의 황사가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오늘따라 송홧가루도 주춤하는 모양새입니다. 아차도, 볼음도, 석모도, 서검도, 미법도, 교동도. 서해의 섬들이 파란 바탕의 도화지에 돌연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읽던 책을 덮고, 운동화 끈을 매었습니다. 일찌감치 산책길에 올랐습니다. 올 봄은 비가 잦아 천수답 다랑구지마다 물이 흥건했습니다. 관정에서 지하수를 퍼 올렸던 모터소리도 숨을 죽였습니다. 가을갈이를 한 무논을 트랙터가 써레질하고 있었습니다. 트랙터 뒤를 쫓아다니는 십 여 마리의 중대백로와 황로의 날개 짓이 분주합니다. 녀석들은 모두 황새목 백로과에 속하는 여름 철새입니다. 중대백로는 우리나라 전역에 널리 번져 흔하게 눈에 뜨이는 제법 덩치가 있는 녀석입니다. 암컷과 ..

까마귀 이제 바다를 넘보다.

“이만하게 자랐겠는 걸.” 어머니가 큰 호박을 움켜잡는 손짓을 하셨습니다. 저녁산책이었습니다. 무려 5개월 만에 녀석을 다시 만났습니다. 4월 중순 대빈창 제방길이 바위벼랑에 막힌 외진 곳. 어머니는 녀석이 발붐발붐 집을 나왔다가 길을 잃어 돌아가지 못했다고 쯧쯧 혀를 차셨습니다. 대빈창 제방길을 가파른 산비탈이 바투 따라가다 바위벼랑이 한굽이 바다를 막아섭니다. 제방과 이어지는 산자락은 온통 아카시나무가 뒤덮었습니다. 아카시와 참나무, 칡과 머루, 키 작은 관목과 사람 키를 웃자란 들풀로 신록이 울창한 산속으로 녀석이 몸을 숨겼습니다. 안경을 쓴 것처럼 눈가에만 둥그렇게 검은 무늬가 박힌 흰 토끼는 덩치가 그대로였습니다. 얼마나 반가운지 녀석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토진아!” 하지만 녀석은 들은체만체 ..

땅콩, 어망(魚網)에 담기다

가난한 살림살이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드러낸 것 같습니다. 원래 오늘 글의 제목은 '식물도 잠을 잔다' 였습니다. 그리고 사진은 수확 전에 찍은 땅콩밭의 모습이었습니다. 말이 우습기도 하지만 식물 중에는 '수면'운동을 취하는 종이 몇 가지 있습니다. 밭가에 흔히 자라는 괭이밥, 정원수로 인기있는 자귀나무 그리고 땅콩이 대표적입니다. 날이 흐리거나 밤중에 잎을 오므리는 특성을 가진 식물들입니다. 그런데 한두달 전 임시저장한 사진이 귀신의 소행인 지 보이질 않습니다. 물론 나의 미숙한 손놀림이 분명 엉뚱한 자판을 건드려 사라진 것 입니다. 놓친 고기가 커 보이는 법인가요. 아니면 꿩대신 닭인가요. 아쉬움이 큽니다. 어머니 방에 불을 들이는 아궁이가 놓인 간이창고에 걸린 땅콩 자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