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문학 4

살구꽃 그림자

책이름 : 살구꽃 그림자 지은이 : 정우영 펴낸곳 : 실천문학사 황송하게 시인님이 블로그를 찾아 주셨다.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집이 떠나갔다』의 리뷰를 올리고 나서였다. 나는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을 손에 넣을 수 없는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살구꽃 그림자』는 품절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마음 여린 시인은 주소를 남기면 시집을 보내겠다고 배려를 베풀었다. 아! 나의 급한 성미가 문제였다. 며칠 전 온라인 중고서적에서 구입한 시집이 택배로 도착했다. 시인의 자필서명이 든 시집을 손에 넣을 기회를 놓쳤다. 내가 사는 주문도는 낙도오지로 배송료가 추가되어, 새 시집보다 오히려 중고시집이 더 비쌌다. 손때가 안 타 말짱한 헌 시집을 아꼈다가 이제 손에 들었다. 1989년 〈민중시〉로 문단에 나온 시인은 등단 21..

밤에 쓰는 편지

책이름 : 밤에 쓰는 편지지은이 : 김사인펴낸곳 : 문학동네 나는 시인을 평론집 『박상륭 깊이 읽기』의 엮은이로 처음 만났다. 어느 환경단체 사이트를 기웃거리다 게시판에 올려진 시가 눈에 들어왔다.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을 찾았다.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가 막 나왔다. 나는 두 권의 시집을 읍내서점에 부탁했다. 묵은 시집을 잡고 따끈따끈한 시집은 아꼈다. 책장 한 구석에 책등을 보이며 얌전히 자리 잡은 시집을 보면 마음 한 구석이 푸근했다. 첫 시집 『밤에 쓰는 편지』는 품절 딱지가 붙었다. 반갑게 부스럼이 떨어졌다. 나는 부리나케 새 판을 찍어 낸 개정판을 손에 넣었다. 4부에 나뉘어 71 시편이 실렸고, 발문은 시인 이문재의 「저 순하여 무서운 웃음」 이다. 발문의 한 대목이다. “김사인은 게..

가만히 좋아하는

책이름 : 가만히 좋아하는지은이 : 김사인펴낸곳 : 창비 쓰다 버린 집들 사이로 / 잿빛 도로가 나 있다 / 쓰다 버린 빗자루같이 / 나무들은 노변에 꽂혀 있다 / 쓰다 버린 담벼락 밑에는 / 순창고추장 벌건 통과 검정 비닐과 스티로폼 쪼가리가 / 흙에 반쯤 덮여 있다 / 담벼락 끝에서 쓰다 버린 쪽문을 밀고 / 개털잠바 노인이 웅크리고 나타난다 / 느린 걸음으로 어디론가 간다 / 쓰다 버린 개가 한 마리 우줄우줄 따라간다 / 이발소 자리 옆 정육점 문이 다시 열리고 / 누군가 물을 홱 길에 뿌리고 다시 닫는다먼지 뽀얀 슈퍼 천막 문이 들썩 하더니 / 훈련복 차림의 앳된 군인 하나가 / 발갛게 웃으며 / 신라면 다섯개들이를 안고 네거리를 가로지른다  「겨울 군하리」(29쪽)의 전문이다. 시인은 어느 겨울..

시금치 학교

책이름 : 시금치 학교지은이 : 서수찬펴낸곳 : 삶이 보이는 창 작가 안재성을 생각했다. 자연스레 출판사 삶창의 책들을 뒤적였다. 구로지역의 진보적 문인들이 공동체 문화 복원을 꿈꾸며 세운 출판사. 잘 팔리지 않는 시집들 중 그래도 대중적으로 알려진 노동자 시인 송경동의 데뷔시집 ‘꿀잠’을 떠올렸다. 시집들의 차례를 건성으로 훑었다.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연작 시편들이 눈길을 끈다. 만인보는 고은의 대하시집 제목이 아닌가. 더구나 해설은 맹문재의 ‘萬人譜 시학’이다. 한때 시뻘겋게 쇳물이 끓어 넘치는 용광로 앞에서 구슬땀을 흘리던 현장 노동자 출신의 시인 교수. 책장에는 그의 시집 ‘사과를 내밀다’가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이 시집은 시인이 등단한 지 17년 만에 펴내는 첫 시집이다. 그리고 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