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륜산대둔사 2

남도(南道), 1996년 여름 - 7

· 단아한 연하문이 여기서부터 경내 임을 알렸다. 명기된 편액은 분명 두륜산대둔사(頭崙山大屯寺)로 새단장되어 있었다. 일제 때 頭崙山이 頭輪山으로 大屯寺가 大興寺로 잘못 표기되었던 것을 바로 잡은 것이다. 그동안 대흥사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을 위해 입장표에도 대둔사(대흥사)로 표기했다. 시인 고은은 '절을 찾아서'에서 대흥사를 소개하면서 부제로 - 선실에 배어있는 그윽한 차향기 - 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글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한다. '추사와 소치. 초의는 추사의 도저한 지존과 소치의 고절, 초의의 시선다 경지가 한데 어우러져 해남 3절을 이룬 일이 있다. 김추사가 귀양간 제주도 남단에 허소치가 그의 향리 진도에서 건너간 일이 있고 초의선사는 그런 추사 소치와 더불어 두륜산 대흥사의 선실에서 당대의 높은..

남도(南道), 1996년 여름 - 6

보길도는 바다를 방황하는 안개에 아랫도리를 빼앗겼다. 나는 부용동 원정과 고산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사적 368호로 지정된 세연정의 입구 안내판에는 고산의 정치적 역정이 소략하게 적혀있다. 여러차례 유배를 당하고, 고향인 해남에 있을 때 병자호란을 당해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해 우국충정으로 강화도로 향했으나, 이미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삼전도의 치욕을 당했다. 이에 울분을 참지 못한 고산은 세상을 등지고 보길도에 칩거했다. 하지만 칩거의 자세에 문제가 있지 않은가. 물론 해남윤씨의 재력이 능히 섬 전체를 원정으로 꾸미는 거대공사의 밑거름이 되었지만 조성 과정에서의 섬사람들의 노동력 징발과 그것을 보는 감정은... 또한 세연정에 배를 띄우고 미희들을 동원하여 자신이 지은 어부사시사를 노래하게 하고, 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