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마을 2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책이름 :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지은이 : 고정희 펴낸곳 : 창작과비평사 이 시집은 시인의 1주기에 맞추어 나온 유고시집이다. 1부 ‘밥과 자본주의’ 연작시 26편, 2부 ‘외경읽기’ 연작시 16시편, 3부 마당극시 ‘몸통일 마음통일 밥통일이로다’ 그리고 4부의 시 두 편‘ 사십대’와 ‘독신자’로 모두 45편이다. 실린 시들이 대부분 길어 시집은 책술이 두텁다. 시집에는 시인 생전의 모습과 영결식 사진 13장과 여성운동 동지 조옥라 교수의 발문과 시인 연보와 이시영 시인의 편집후기가 실렸다. (······) 크고 넓은 세상에 / 객사인지 횡사인지 모를 한 독신자의 시신이 / 기나긴 사연의 흰 시트에 덮이고 / 내가 잠시도 잊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달려와 / 지상의 작별을 노래하는 모습..

남도(南道), 1996년 여름 - 6

보길도는 바다를 방황하는 안개에 아랫도리를 빼앗겼다. 나는 부용동 원정과 고산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사적 368호로 지정된 세연정의 입구 안내판에는 고산의 정치적 역정이 소략하게 적혀있다. 여러차례 유배를 당하고, 고향인 해남에 있을 때 병자호란을 당해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해 우국충정으로 강화도로 향했으나, 이미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삼전도의 치욕을 당했다. 이에 울분을 참지 못한 고산은 세상을 등지고 보길도에 칩거했다. 하지만 칩거의 자세에 문제가 있지 않은가. 물론 해남윤씨의 재력이 능히 섬 전체를 원정으로 꾸미는 거대공사의 밑거름이 되었지만 조성 과정에서의 섬사람들의 노동력 징발과 그것을 보는 감정은... 또한 세연정에 배를 띄우고 미희들을 동원하여 자신이 지은 어부사시사를 노래하게 하고, 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