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석 모란공원 2

마석 모란공원에 다녀오다 - 2

오월 마지막 주말. 2년 만에 마석 모란공원에 발걸음을 했습니다. 절기는 바야흐로 이 땅의 산하를 울창한 신록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의 열사 묘역도 녹음에 둘러싸여 짙은 그늘을 드리웠습니다. 마음이 무거웠나 봅니다. 전날 저녁 몇 잔 기울인 술에 몸이 늘어졌습니다. 해장국으로 속을 달래고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공원 앞 꽃집에서 국화 열 송이를 준비했습니다. 세로로 쓰인 신영복 선생 특유의 연대체 글씨. 가로로 쓰인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의 비석. 〈민주 열사 추모비〉 두 비가 맞아 주었습니다. 전태일(1948 - 1970) / 이소선(1929 - 2011) 노동자의 어머니 / 통일운동가 문익환 목사(1918 - 1994)·박용길 장로(1919 - 2011) / 박종철(1965..

마석 모란공원에 다녀오다

너는 죽고/분단과 조국의 노예 상태를/뜬눈으로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어/기름 부어 제 몸에 불질러 죽고/너는 죽고/압착기처럼 짜내는 노동의 착취를/인간의 한계로는 더 이상 이겨낼 수 없어/뼈만 남은 육신에 기름 부어 불에 타 죽고/바위 같은 무게의 농가부채에 깔려/모진 밥줄에 농약 부어 죽고/너마저 죽고/분신과 음독으로 치닫는 정국을/도저히 가망할 수 없어/강물에 꽃다운 나이를 던져 죽고/나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감옥에서/잇단 죽음의 충격에(‘별’의 1연) 김남주의 시집 ‘조국은 하나다’를 먼저 륙색에 쟁였습니다. 손수건, 챙 넓은 모자, 양말, 여행용 세면도구 그리고 카메라도 챙겼습니다. 열사들을 뵙겠다고 마음을 잡은 지 두 달 반만의 발걸음이었습니다. 남양주 도농까지 아는 이의 차편을 얻어 탔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