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죽고/분단과 조국의 노예 상태를/뜬눈으로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어/기름 부어 제 몸에 불질러 죽고/너는 죽고/압착기처럼 짜내는 노동의 착취를/인간의 한계로는 더 이상 이겨낼 수 없어/뼈만 남은 육신에 기름 부어 불에 타 죽고/바위 같은 무게의 농가부채에 깔려/모진 밥줄에 농약 부어 죽고/너마저 죽고/분신과 음독으로 치닫는 정국을/도저히 가망할 수 없어/강물에 꽃다운 나이를 던져 죽고/나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감옥에서/잇단 죽음의 충격에(‘별’의 1연)
김남주의 시집 ‘조국은 하나다’를 먼저 륙색에 쟁였습니다. 손수건, 챙 넓은 모자, 양말, 여행용 세면도구 그리고 카메라도 챙겼습니다. 열사들을 뵙겠다고 마음을 잡은 지 두 달 반만의 발걸음이었습니다. 남양주 도농까지 아는 이의 차편을 얻어 탔습니다. 전철과 경춘선으로 마석에 닿았습니다. 긴 여름해가 꼬리를 사리고 어스름이 스며들었습니다. 개발 바람이 드세기는 여기도 매한가지였습니다. 눈 닿는 산자락에서 중턱을 거쳐 능선까지 시멘트 구조물이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마석은 ‘돌을 연마하다(磨石)’는 뜻이었습니다. 간이식당에서 쓸쓸하게 저녁을 때웠습니다. 네온사인의 끈적끈적한 유혹이 흩뿌려지는 역 앞으로 나섰습니다. 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파들의 발걸음이 몹시 바쁘게 서둘렀습니다. 나는 무연히 그들의 뒷모습을 쫓다가 일찌감치 잠자리를 찾아 들었습니다. 잠자리가 바뀐 탓인지 쉬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저는 곧장 모란공원으로 향했습니다. 마석역에서 묘역까지 걸어서 15분 거리였습니다. 너무 일찍 왔습니다. 철문이 굳게 잠겼습니다. 개장시간은 8시 30분이었습니다. 다시 마석역으로 돌아와 아침을 먹고 한 시간여를 하릴없이 흘렸습니다. 공원 앞 꽃집에서 국화 다섯 송이를 샀습니다. 열사들의 묘역은 공원 입구 오른편에 자리 잡았습니다. 신영복 선생의 글씨가 새겨진 추모비가 맞아 주었습니다. ‘모란공원 민주열사 추모비’. 전태일, 이소선, 조영래, 문익환, 계훈제, 박종철, 권중희, 김근태, 성완희, 김귀정, 박래전, 천세용······. 어쩌자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뻐꾸기는 구슬프게 울었고, 자귀나무는 부채처럼 화려한 꽃술을 펼쳤습니다. 지독한 가뭄이 연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단비는 언제 쯤 퍼 부을까요. 겨울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p.s 나는 28일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참배했다. 강화에는 29 ~ 30일 양일간 60mm의 비가 내렸다. 거북등같이 갈라진 논바닥에 가슴이 졸아들던 농부들은 한시름 놓았다. 급한 불은 일단 꺼졌다. 해갈은 되었지만 아직 작물은 목이 마르다. 농부들은 이런 말을 한다. '비 한번 오시는 것이 비료 한번 주는 것보다 낫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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