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도 봉구산 초입 산비탈에 찔레꽃이 한창입니다. 하얀 찔레꽃이 필 무렵이면 비 구경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찔레꽃이 필 때 비가 세 번만 오면 풍년이 든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올 봄가뭄은 도가 지나칩니다. 5월 강우량이 예년의 1/10에도 못 미친다고 합니다. 밭에 심겨진 작물들이 참을 수 없는 갈증에 고개를 숙이고 졸고 있습니다. 찔레는 장미과 장미속에 속하는 낙엽성 관목입니다. 찔레라는 이름이 생긴 유래로 꽃이 예뻐 가지를 꺽다가는 영락없이 가시에 찔리게 되므로 ‘찌르네’가 찔레로 변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이들은 누구나 찔레순을 먹었습니다. 봄철에 새순이 트면 연한 순 껍질을 까서 씹으면 들쩍지근한 맛이 달콤해, 궁한 시절 아이들의 좋은 군것질거리 였습니다. 저는 찔레꽃을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에 물기가 차 오릅니다. 내년이면 여든이신 어머니의 18번지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모르는 어머니가 몇 구절 간신히 읊조릴 수 있는 유일한 노랫말입니다. 부끄럼이 많으신 어머니가 여적 살아오시면서, 마지못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신 것은 다섯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몇 소절 웅얼거리시다가 가사를 까먹으시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황급히 자리로 돌아오셨습니다.
감나무의 학명은 디오스피로스(Diospyros)로 ‘과실의 신’으로 서양에서 대접을 받았습니다. 세계적으로 감나무는 200여종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감나무와 고욤나무 2 종만이 자랍니다. 감나무를 칠절(七絶)이라 하여 우리 선조들은 가까이 하고 아꼈습니다. 오래 살고, 좋은 그늘을 만들며, 새가 집을 짓지 않고, 벌레가 없으며, 단풍이 아름답고, 열매가 먹음직스러우며, 잎이 커 글씨를 쓸 수 있음을 이릅니다.
감나무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청명한 가을 하늘과 주렁주렁 매달린 홍시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위 이미지의 코팅된 것처럼 반짝이는 감나무의 새 잎은 눈 맛을 시원하게 합니다. 사진의 감나무는 ‘겨울 감나무는 텃새들의 식량창고다’라는 글에 등장하는 제가 사는 주문도의 느리 마을에서 가장 나이 먹은 나무입니다. 줄기의 겉껍질이 거북등처럼 갈라졌습니다. 연로한 감나무는 둥치에 무수한 손자가지를 길렀습니다. 그중 가장 큰 가지가 할아버지 나무의 줄기가 갈라지는 지점까지 키를 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줄기 틈새에 찔레가 뿌리를 내렸습니다. 찔레 줄기의 목질화로 보아, 3 ~ 4살 정도 먹은 어린 찔레였습니다. 혹독한 가뭄이 이어지면서 산비탈의 나이 먹은 찔레들은 가쁜 숨을 헐떡입니다. 어린 찔레는 감나무의 넓은 그늘 속에 몸을 묻었습니다. 부럽습니다.(이유미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나무 백 가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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