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 해변에서 봉구산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시멘트로 포장된 길 양안은 모두 밭입니다. 거개 고구마가 심겨 있거나 띄엄띄엄 고추밭입니다. 밭마다 울타리로 폐그물을 둘렀습니다. 고라니의 침범을 경계하는 방책입니다. 섬의 밭농사는 야생동물과의 투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장 피해를 크게 입히는 놈은 멧돼지와 고라니입니다. 멧돼지에게 폐그물은 무용지물입니다. 야행성인 놈들은 밤에 내려와 울타리 그물이 우습다는 듯 말 그대로 쑥대밭을 만들어놓기가 일쑵니다. 아침에 밭을 둘러 본 섬사람들은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 전 새끼 두 마리를 거느린 멧돼지가 주문도에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유해조수수렵단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사냥꾼이 나타나자 녀석들이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사냥꾼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멧돼지들은 화약내를 기가 차게 맡는다고.’ 눈치를 챈 녀석들이 이웃 섬으로 도피를 한 것입니다. 멧돼지들은 수영선수입니다. 서도 군도(群島)의 섬들을 제집 안방처럼 드나듭니다. 멧돼지들은 다음날 옆섬인 볼음도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안개가 걷히기 전 이른 아침에 산자락의 밭에 나가보면 가끔 울타리에 갇힌 고라니가 껑충껑충 놀란 뜀박질을 합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친 밭주인과 한바탕 쫓고 쫓기는 소동이 일어납니다.
고라니는 야들야들한 새순을 좋아합니다. 고구마, 고추, 콩 등 땅을 비집고 올라오는 새순을 탐합니다. 밤새 고라니의 습격을 받은 밭주인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작물은 파종시기와 생육기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다시 씨를 뿌릴 수가 없습니다. 섬사람들은 콩과 땅콩도 포트에 싹을 내서 밭에 이식합니다. 땅에 직접 종자를 묻으면 산비둘기란 놈만 좋은 일을 시키기 때문입니다. 어렵사리 밭에 옮겨 심으면 고라니가 새순을 탐하니, 오죽 부아가 끊겠습니까.?
남의 말에 따라 줏대 없이 행동하는 사람을 빗대어 ‘쓸개 빠진 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줏대 없는 사람을 쓸개 빠진 놈에 비유를 하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결단력이 강한 사람을 ‘대담하다’ 혹은 ‘담력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담膽은 쓸개를 말합니다. 사냥꾼들은 고라니를 쉽게 잡습니다. 고라니를 쫓다보면 녀석은 얼마만큼 도망가다 갑자기 멈춰 서서 뒤를 돌아봅니다. 그때 사냥꾼은 방아쇠를 당깁니다. 자기가 현재 어떤 처지에 처해 있는지도 모르는 고라니의 멍청한 짓은 쓸개가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우스개 소리로 들었는데 그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말, 노루, 고라니 등 풀만 먹는 초식동물은 담낭膽囊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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