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나무 3

5월은 가정의 달

우리집은 봉구산자락에 앉았습니다. 단층집 옥상 슬라브는 봉구산을 오르는 진입로와 높이가 비슷합니다. 뒤울안의 경사면은 화계花階로 꾸몄습니다. 마당에서 계단을 내려서면 텃밭입니다. 텃밭은 대략 40여 평으로 대빈창 해변으로 향하는 언덕을 깎아 석축을 쌓았습니다. 언덕을 오르며 우리집을 바라보면 영락없이 이층집입니다. 1층 3칸은 창고로 농기구와 퇴비포대 그리고 진돗개 트기 느리가 한 칸을 집으로 삼았습니다. 김포 통진에서 서해의 작은 외딴 섬 주문도로 삶터를 옮긴 지 15년이 흘렀습니다. 2007년 여름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화장 유골을 봉구산 아름드리나무 밑에 가매장 했습니다. 초겨울 이삿짐을 옮기고 다음해 봄, 산림조합의 나무시장에서 3년생 모과나무를 들여왔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

모과에 앉은 청개구리

“에미 무덤을 논두렁에 써서 비가 오면 떠내려 갈까 청개구리가 우는 거래.” 어머니가 말씀하십니다. 조그만 녀석의 금속성 울음이 찢어질 듯 요란합니다. 모과 열매에 청개구리 한 마리가 앉았습니다. 청개구리가 마구 울어 비가 퍼 부었으면 좋겠습니다. - 2007년 8월 8일(음) / 안셀모 / 자연으로 돌아가시다. - 모과나무 옆 누워있는 작은 비석에 새겨진 문구입니다. 아버지가 안식을 취하신 모과나무는 수령 10년이 되었습니다. 모과나무가 그럴듯하게 열매를 매달았습니다. 그동안 1 ~ 2개가 고작이었습니다. 30여개 모과가 새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무게를 받쳐주려 줄을 매었습니다. 올해 아버지가 식구들에게 모과를 내주셨습니다. 가을이 깊어 가면서 열매가 연두에서 노랑으로 변해갑니다. 모과를 과도로 얇게..

아버지, 자연으로 돌아가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겨우 참았을 것이다 처자식이 딸린 몸이라 늘 과묵했을 것이다 초지일관 소시민처럼 무력했을 것이다 일반적인 유권자답게 어리석었을 것이다 철저히 비겁하거나 비굴했을 것이다 설마 좀 부끄럽기는 했을 것이다 행여 자식들한테 들킬세라 체면은 늘 조마조마했을 것이다 애는 끊어지고 심장은 자칫 터져버릴 뻔 했을 것이다 그럴수록 생활은 더 위축되고 경직됐을 것이다 가끔 화난 얼굴로 이렇게 한마디 툭 던지는 게 고작이었을 것이다 - 집구석 꼬락서니 하고는 아내나 자식들은 콧방귀조차 뀌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혼자 주절거리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 이제 처자식 때문에 조아리고 굽실거리는 게 버릇이 되었는데 - 이 세상의 그놈들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 강한 놈 앞에 서면 어김없이 처자식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