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낙동강 before and after
지은이 : 지율 외
펴낸곳 : 녹색평론사
'88년은 보통 사람들에게 서울올림픽 해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월북 문인의 작품을 해방이후 처음 접할 수 있었던 해로 인상 깊다. 현대소설을 가르치던 담당교수는 나의 졸업논문 주제로 월북문인을 다루면 어떻겠냐고 넌지시 말을 건넸다. 나는 마음속으로 포석 조명희의 작가론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프롤레타리아문학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락동강'의 강렬한 인상 때문이었다. 그 시절 출간된 월북문인 문학전집에 실린 작품들은 웃기게도 독자에게 낱말 맞추기 퀴즈를 제공했다. 즉 '○ ○ ○ ○ ○ ○ 만세 !' 이런 식이다. 그러면 나는 문장의 앞뒤 맥락을 유추하여 프롤레타리아인 지, 마르크스주의 인지를 어림짐작해야만 굼뜬 소설 읽기의 진도를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교수의 애정어린 완곡한 부탁을 경직(?)된 마르크스주의자답게 일거에 거스르고 직접 현장에 발을 담그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졸업논문은 역사(?)상 처음으로 각주하나, 참고문헌하나 달리지 않는 습작소설 수준의 졸렬한 사이비 논문으로 대체하고 말았다. 책장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80년대 신춘문예소설당선작품집의 작품들을 문예경향에 맞추어 통계를 낸 200자 원고지 100장 분량의 원고였다. 5년전 나는 생면부지의 낙도 오지인 서도로 발령 받았다. 혁신 역량을 키우라는 교육을 우습게 알고 동해안으로 도망쳐 망중한을 즐긴 죄였다. 그때 하루 세끼 밥을 사먹던 하숙집은 끼니때마다 북새통이었다. '참! 이 나라가 어찌되려고 계집 중 한년이 밥 굶는다고 공사가 중단되다니, 그런 빨갱이 같은 년은 당장 굶겨 죽여야 돼.' 나는 하마터면 입안의 반쯤 씹다만 밥알을 쏟아낼 뻔 했다. 여기서 공사는 17분 빨리 달리겠다고 7조 이상을 퍼부은 고속철도화사업이고, 비구니는 천성산 내원사의 지율스님 이었다. 그뒤 스님은 꼬리치레도롱뇽의 자연 권리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말끝마다 빨갱이을 달고사는 열혈 극우(?)인 그 양반은 지금은 어느 지역에서 이 건에 대해 씨부렁거리고 있을까. 궁금하다. 그때 고속철도시설공단이사장이 지금은 국토해양부장관이 되어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번달부터 녹색평론에 후원금을 자동이체하고, 사이트를 찾으니, 50쪽 분량의 낙동강 현장 사진 자료집인 이 책이 나왔다. 서점에 깔리지는 않고 녹색평론의 후원자나 정기구독자에게 우편으로 판매하고 있다. 며칠 전 주문도 선착장에서 30년 만에 고교동창을 만났다. 통진 읍내 땅부자로 김포 신도시 개발로 돈다발 처리에 고심 중인 친구였다. '투자 좀 할까'하고 후배를 대동하고 이 먼 섬까지 왕림하셨다. 이 소책자에는 스님이 직접 찍은 낙동강 개발 전후의 사진이 실려있다. 내게는 청계천 복원(?)처럼 눈 가리고 야옹! 하는 '4대강 삽질'이 이들에게는 한몫 단단히 챙겨주는 자본주의적 아름다움을 선사한다는 것이 이 시대의 웃지못할 비극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