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미쳐야 미친다
지은이 : 정민
펴낸곳 : 푸른역사
지은이 정민의 저작물을 처음 잡았다. 그동안 나는 저자를 시인 강제윤의 책마다 등장하는 표사로 접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인연일까. 약력을 보니 한양대 국문과 출신으로 모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렇다. 시인의 모교이기도 하다. 나이차로 보아서 스승과 제자보다는 선후배로 보는 것이 그럴듯하다. 몇년전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의 작가로서 얼핏 나의 눈길을 끌었으나, 이내 망각 속으로 묻혔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특이한 표제의 책은 이제야 나의 손길을 타게 되었다.
2004년에 초판이 발행되었고, 만 6년만에 45쇄를 발행한 인문학 분야에서 보기드문 장기 베스트셀러였다. 선조들의 한시나 시문에서 쾌쾌묵은 곰팡내를 연상하는 나의 선입관 때문일까. 아니면 고답적인 문장이 주는 갑갑함에 이내 고개를 흔드는 나의 조급한 성미 때문일까. 그러고보니 나의 책장에는 우리 옛글의 번역본이 별로 눈에 뜨이지 않는다. 고작해야 한때 인기몰이를 했던 실록 해설서가 고작이고, 그나마 마음먹고 구입한 '국역 근역서화징'은 먼지만 잔뜩 뒤집어썼다.
겉표지를 장식한 강렬한 제호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앞날개를 펼치니 제호는 고암 정병례의 전각이었다. '미쳐야 미친다' 즉 불광불급(不狂不及) -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가 없다. 책은 3부로 구성되었는데, 1부 '벽(癖)에 들린 사람들'이야말로 이 책의 제목을 결정한 요인이다. 여기서 벽(癖)은 요즘말로 좋게 표현하면 열정적인 마니아 기질이고, 나쁘게 말하면 또라이, 바보, 쪼다, 멍청이가 된다. 꽃의 정밀한 묘사에 미친 화가 김덕형, 매화시광(梅花詩狂) 김석손, 수석 수집의 이유신과 신위, 끽연가 이옥, 비둘기 사육 유득공, 그림에 미친 이징, 굶어죽은 천재 천문학자 김영, 무식한 수천 번의 독서로 타고난 둔재를 뛰어넘은 김득신, 책만 읽는 바보 이덕무, 과거시험만 보면 급제한 몰락한 잔반(殘班) 노긍 등.
이들은 처참한 가난과 신분적 질곡 속에서도 맹목적인 자기확신으로 시대를 앞서 끌고 나갔다. 그들은 18세기 실학의 주역이었다. 이 책의 부제는 '조선 지식인의 내면 읽기'로 2부 '맛난 만남'에서는 인생과 삶을 바꾼 만남을, 3부 '일상 속의 깨달음'은 고수들의 통찰력에 얽힌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세상이 냉대하고 멸시해도 자신만의 열정과 신념으로 한 세상을 살다간 이들의 고달픈 삶에서 나는 무엇을 읽었는가. 아둔한 나는 서툰 답조차 내기 어렵다. 다만 좀더 깊이 파고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실천적 지식인 다산 정약용에 대해서. 괜한 조급증으로 목이 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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