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꽃짐
지은이 : 정상명
펴낸곳 : 이루
책 표지의 인용부호 안에 실린 문구가 이 책의 내용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가장 고통스런 짐이 가장 아름다운 꽃이 되었습니다" 책 속에서 지은이는 이 말을 이렇게 부연 설명했다. '저는 지금 큰딸의 기억을 등에 업고, 어느새 훌쩍 커서 친구가 된 작은딸의 손을 잡고 남은 생을 걸어갑니다. 큰딸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가 진 짐들 중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꽃짐입니다. 어느 누구라도 그래야만 하겠지요. 고단하고 무겁기만 했던 한평생의 어떤 짐도 마침내는 꽃짐이 되어야 할 것 것입니다.' 작가는 문화사업가인 남편을 둔 이 땅의 상류층의 '귀부인'으로서 잘 나가는 두 딸을 둔 남부럽지 않은 순탄한 삶을 살아왔다. 1998년 12월 오버린 음대 유학중 방학을 맞아 고국을 찾은 큰 딸이 불의의 화제로 목숨을 잃는다. 더욱 안타까운 사연은 어미인 저자가 그 참상을 직접 눈으로 본 것이다. 소방차가 달려왔지만 비좁은 골목길에 주차한 승용차들로 도로가 막혀 큰딸이 한줌의 재로 변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미의 고통과 슬픔과 분노는 이루 말할 수없었다. 하지만 평탄한 삶을 영위하였지만,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마음여린 화가는 큰딸의 죽음을 가장 올바른 방식으로 승화시켰다. 강원 춘천의 퇴골 '자두나무집'에 큰딸을 묻고 지은이는 이렇게 다짐한다. '이제부터는 전과 다르게 살겠다.' 1999년 환경단체 '풀꽃세상'이 이 땅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큰딸의 이름은 천초영(千草英)이었다. 그리고 영세명은 '레나떼'로 우리말로 '다시 태어난 여인'이 된다.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죽은 큰딸의 이름이 바로 단체의 이름이고, 어미는 환경운동가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풀꽃세상'은 기존의 운동방식인 거부와 항의가 아닌 '생명에 대한 감수성의 회복'이라는 새로운 운동방식을 펼친다. 환경생태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듯이 새나 돌멩이, 꽃과 길, 자전거와 지렁이 등에게 상을 드리는 '풀꽃상'이 단체의 성격을 말해준다. 저자는 단체회원이 4천명을 넘어서고 스스로 발걸음을 내딛자 일반회원들에게 단체 운영을 맡기고, 큰딸이 묻힌 퇴골에 부설조직인 '풀꽃평화연구소'를 설립한다. 지은이는 1950년생이니 쉰에 큰딸을 잃고 환경운동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작가의 삶의 여정을 알아야만 표제를 이해할 수 있다. 작은딸 천샘은 엄마와 함께 연구소 활동에 열성이다. 책은 4부로 나뉘어 46개의 짧은 글들이 실려있고, 저자의 유화와 색연필화 30점과 일상사진이 수록되었다. 책이 출간되자 저자는 제일 먼저 큰딸이 묻혀있는 자두나무집을 찾았다. '○ ○ ○ 님 연구소를 후원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해요. 하루하루 평안하세요 2009. 6. 12 풀꽃평화연구소 왕풀 정상명 드림.' '60살 소녀화가'답게 자필서명에는 여린 풀 한포기가 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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