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대빈창 2010. 4. 4. 16:25

 

 

책이름 :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지은이 : 이문재

펴낸곳 : 호미

 

역설적인 제목의 이 산문집에는 표제에 얽힌 우여곡절이 숨어있다. 틈만 나면 온라인 서적에 들어가 신간서적을 검색하던 나의 눈길에 건방(?)진 제목의 산문집이 눈에 뜨였다. 전면이 붉은 바탕에 제목은 '이문재산문집', 출판사는 '호미'였다. 안 그런가. 소설집의 표제를 '○ ○ ○ 소설집' 이라거나, 시집의 표제를 '○ ○ ○ 시집'이라고 붙인 것과 매일반이었다. 소설집이나, 시집은 가장 대표 작품을 표제로 삼거나, 상징적인 구절을 따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은이는 김포 출신으로 시인이지 에세이스트가 아니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품절'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렇게 생명이 짧은 책도 있는가. 놓친 고기가 더 크게 보이는 법인가. 괜한 아쉬움이 들었다. 그런데 같은 출판사에서 개정판으로 얼굴을 내민 산문집은 겉표지도 미색으로 바뀌었고, 만해 한용운의 시 한 구절을 따와 이름을 삼았다. 이 산문집은 시인 이문재가 문단에 등단한 지 25년만에 처음 내는 에세이다. 모두 48편의 에세이와 사진작가 강운구의 소나무 사진 9컷이 4부에 나눠 실려있다.  1부 '나는 아날로그다'는 디지털 문명에 대한 비판을. 2부 '몸의 노래'는 자연에 순응했던 우리의 삶과 몸에 대한 이야기. 3부 '미래주의보'는 현대문명에 대한 생태학적 고찰이고, 4부 '이 음식이 어디서 오셨는가'는 슬로푸드에 대한 단상이다. 시인은 문학과 언어의 힘은 '인간과 생명을 옹호하기 위해 반인간·반생명과 싸우는 부정의 정신으로 오늘날 절실한 것은 생태학적 문제의식과 생태학적 상상력'이라고 단언한다. 그러기에 피난민이며 농부인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한다. 4부의 제철 음식으로 봄 두릅, 가을 송이, 가을 전어, 겨울 굴, 겨울 매생이가 등장한다. 작가는 어릴 적 덕적도 아줌마가 굴을 팔러 마을에 나타나면 김장철이 다가왔음을 알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강굴을 숟가락 가득 담아 간장종지에 찍어 드시던 장면을 회상한다. 그렇다. 나의 어릴적도 다리가 짧은 지게를 멘 아저씨가 동구 밖에 나타나면 초겨울이 다가왔음을 알았다. 지게에 올려진 가마니에 굴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됫박으로 쌀을 팔아 그 귀한 굴을 밥상에 내 놓으셨다. 아버지는 숟가락으로 드셨을지 몰라도 1년에 한번 밖에 없던 별식을 우린 한 점씩 조선간장에 찍어 먹었다. 지금 살고 있는 주문도는 자연산 굴이 흔하다. 지나간 겨울에는 원없이 굴을 실컷 먹었다. 여기서 상식 한 가지. 굴은 바다 생물이지만 담수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큰물이 져서 바다로 쓸려온 담수에 염농도가 낮아야 굴이 여문다. 비가 안와 땡볕만 무성하던 지난 2년은 굴이 짠물에 시커멓게 타 폐사하는 바람에 굴 구경도 못했다. 자연생태의 오묘함은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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